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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 개괄
    金仁浩는 경남 밀양 출신으로 경기中 高와 서울大 法大를 거쳐 행정고시 4회에 합격하여 1967년 1월 경제기획원에서 사무관으로 관계에 첫발을 내 디뎠다. 그 이후 줄곧 경제기획원에서 물가정책국장, 경제기획국장, 차관보, 대외경제조정실장 등 핵심직책을 두루 거치는 등 정통경제관료로서의 길을 걸었다.

    1992년 6월 환경처차관이 되면서 경제기획원을 떠난후,
    1993년 4월 한국소비자보호원장,
    1994년 8월 철도청장,
    1996년 3월 장관급으로 격상된 공정거래위원회의 초대 위원장, 1997년 2월28일부터 장관급의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으로 재직하는 등 폭넓은 관직을 역임했다.

    97년 11월 공직 퇴임 후에는 국가경영전략연구원의 원장, (주)와이즈인포넷 회장 및 법무법인 세종 부설 시장경제연구원의 운영위원장, 2004년 4월부터 2007년 7월까지 중소기업연구원장으로 재임 한바 있다.

    2008년 4월 독립재단으로 발전한 시장경제연구원의 이사장에 취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편 2010년 11월 3년 임기의 정부 소비자정책 위원회의 공동(민간)위원장으로 위촉되어 소비자 정책의 수립과 조정에 기여한바 있고 2014년 11월부터는 정부의 제2기 중장기정책위원회의 공동(민간)위원장으로 선출되어 정부의 중장기전략 수립에 깊이 참여하고 있다.
    2015년 2월 26일 7만여 회원사를 대표하는 한국무역협회 회장으로 선출되어 한국의 무역진흥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나아가 우리 기업들이 글로벌 기업가 정신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고 우리나라를 ‘세계일류의 기업가형 국가’로 발전시키고자 노력하고 있다.

  II. 주요경력과 활동
    1985년 2월부터 1988년 1월까지 만 3년 동안 경제기획원의 최장수 물가정책국장으로 재임당시 우리 역사상 가장 안정된 물가수준을 유지하는데 공헌하였다. 또한 당시 선언적 성격에 불과하던 「소비자보호법」을 보다 체계적이고 실체적인 내용으로 전면 개정하고 「約款規制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여 오늘날과 같이 정비된 소비자 보호체계를 확립하였다.
    1989년부터 1990년까지 경제기획원의 경제기획국장, 차관보로 재직하면서 土地公槪念 3법의 입법작업과 당시 추진하다 중단된 금융실명제 등의 경제개혁작업을 실무지휘하였다. 1990년부터 1992년까지 대외경제조정실장 재직시에는 UR대책실무위원장, EC통합대책실무위원장, 북방경제실무부위원장 등을 맡아 우리 경제의 국제화 추진과정에서 범정부차원의 실무책임자로 활약하였으며, 남북대화과정에서는 교류협력분과위원외의 부위원장으로 북한측과 9차에 걸친 협의로 교류협력분야 합의서를 작성하는 등 南北經協의 주역을 맡기도 하였다.

    그후 1992년 6월 환경처차관으로 승진하여 자리를 옮긴 뒤 UNCED이후의 국제 환경여건에 대처하기 위한 지구환경책의 수립, 1992년 입법완료된 6개 주요환경관련법률의 制·改正, 환경기술개발원의 설립 등의 업적을 남겼다.

    김영삼 정부의 출범과 동시에 環境處次官을 물러남으로써 잠시 정부를 떠나게 되었으나 곧 바로 1993년 4월 韓國消費者保護院長을 맡아 그가 物價政策局長 재임시 시작한 消費者 問題의 규명과 消費者 政策의 발전에 몰두한 바 있다. 그는 당시 소비자 문제를 중심으로 한국경제의 문제를 구조적으로 깊이 생각하기 시작했고 이때 소비자 중심의 경제구조의 구축 없이는 진정한 의미의 경쟁구조의 정립도, 경제의 국제화도 불가능하고 이런 구조하에서는 원천적으로 경쟁력이 생길 수 없다고 하는 독특한 경제관을 정립하게 되었다. "消費者主義", "消費者가 選擇하는 經濟", "國際化와 消費者主義" 등은 당시 그에 의하여 집필되거나 발표된 많은 기고, 강연 등을 통하여 발전된 핵심적인 개념이었으며 이러한 사고의 발전은 생산자 중심의 사고에 익숙해있던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이었고 이후 각 분야의 정책결정을 소비자 중심으로 유도하는 데 크게 영향을 미침으로써 종래 여성들의 운동 차원의 관심 영역에 머물던 소비자 문제를 경제정책의 핵심적 분야로 끌어올리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바 있다. 製造物 責任 法理의 定立, 消費者 危害 情報 體系의 發展 등 消費者安全制度의 획기적 발전도 그의 소보원장 재임시 이루어졌다.

    1994년 8월 철도청장으로 부임하여 公企業으로는 처음으로 "고객중심경영혁신운동"을 전개하여 100년에 가까운 관청기업인 철도의 체질개선작업에 착수하여 큰 성과를 거둔바 있다. 특히 1996년 1월1일부터 철도청을 철도공사로 전환하려던 정부의 정책이 수정됨에 따라 철도건설에 대한 국가의 支援體系의 정비와 민간경영기법의 도입 및 사업의 다각화, 철도경영의 자율성 보장 등 제반사항을 종합한 "國有鐵道의 운영개선에 관한 특례법"의 제정을 주도하여 기간교통수단으로서의 철도의 체계적 건설과 공기업으로서도 경영개선을 기해 나갈수 있는 획기적인 기반을 마련한 바 있다.

    1996년 3월8일 장관급으로 격상된 공정거래위원회의 초대 委員長으로 취임했다.
    위원회 운영을 고객중심으로 전환하기 위한 제도 절차와 의식 관행의 개선, 산업전반에 競爭構造를 정착하기 위한 경쟁제한적 법령 제도 관행의 개선,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균형적발전 및 협력관계 조성을 위한 경제력집중억제제도 개선과 각종 불공정거래행위의 조사 시정에 주력하였다. 그가 委員長재직시 추진한 대기업의 相互債務保證制度 폐지, 내부거래규제 강화, 기업 結合財務諸表제도의 도입 추진 등은 우리 경제의 구조개선을 위한 획기적인 정책추진으로 평가받고 있고 다음 김대중 정부에 의해 같은 방향으로 제도개편이 이루어진 바 있다. 재임기간 중 그의 최대의 관심사항은 공공부문의 비경쟁적 요소를 어떻게 줄일 것인가에 있었고 이를 위한 법적 뒷받침의 정비 등을 추진한 바 있다.

    1997년 2월 28일 장관급의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에 임명되었다.
    한보부도사태 이후 드러난 우리 金融産業의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고자 추진중인 金融改革작업에 주도적 역할을 하였으며, 평소지론인 市場經濟 질서 회복과 構造調整을 통한 우리 경제의 경쟁력 제고에 노력하였고, 경제분야 정부규제의 대폭적 개선, 21세기를 향한 경제비젼의 제시를 위하여 진력한 바 있다.

    외환위기직전 1997년 11월 19일 경제수석을 사임하여 30여 년의 공직을 떠났다.
    이후 현재까지 주로 민간의 연구분야에서 다양한 직책을 맡아 한국경제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규명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연구 및 집필과 강연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1999년 9월 8일 부터 2000년 10월 8일까지 국가경영전략연구원(National Strategy Institute:NSI)의 원장으로 재임하였다. 이 기간동안 그는 그간의 오랜 국정경영에 대한 경험을 토대로 민간의 시각으로 국가경영에 대한 다양한 정책을 제언한 바 있다.

    2000년 10월 9일 부터 2001년 11월 25일까지 (주)와이즈인포넷(舊 와이즈디베이스)의 會長으로 재임함으로써 공직생활이후 처음으로 민간기업에 몸을 담은바 있다. 와이즈인포넷은 1993년에 설립되어 그동안 주로 기업과 정부기관을 대상으로 해외전문정보를 제공해온 정보 컨텐츠 회사로 국제화 정보화시대에 걸맞는 벤처기업이다. 그간의 경험을 살려 와이즈를 통하여 우리 경제와 경영의 국제화와 지식정보화에 기여한 바 있다.

    2001년 4월 9일부터 그는 법무법인 世宗과 공동으로 시장경제연구원을 설립하여 2004년 4월 15일까지 그 운영위원장을 맡았다. 同 연구원은 경제적·법률적 분석방법을 동시에 사용하여 복잡한 경제·법률 문제에 접근하려는 국내 최초의 조직적 시도이다. 이 연구원을 통해서 시장원리를 근간으로 하여 한국경제를 발전시키려는 그의 평소의 구상을 연구, 각종언론에의 기고, 연구원주관의 토론회, 세미나 등을 통해 제시하고 사회적 공론을 이루어 가려고 노력하였다. 특히 월간조선과 공동기획으로 「시장경제와 기업하기 좋은 환경,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매월 진행했던 프로그램은 각계의 최고 지성들의 토론을 통해 국정주요과제에 대해 합리적 대안제시와 사회적 공론형성을 위한 기획시리즈로 평가받았다.

    2004년 4월 16일부터 2007년 7월 15일까지
    그는 중소기업연구원의 원장으로 취임하여 이 연구원의 기능과 인력을 강화하고 법인체의 성격도 변경하여 동 연구원을 명실상부한 국내 유일의 중소기업문제 전담 연구원으로 육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국경제의 최대의 과제로 대두된 중소기업의 문제 해결을 위해 진력한 바 있다.

    2008년 4월 15일
    (재)시장경제연구원의 이사장으로 취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는 이 연구원을 통해 시장원리에 입각하여 한국경제와 기업경영의 문제점의 본질을 규명하고, 각종 대안제시를 위한 연구활동과 기업 등에 대한 자문활동을 하고 있다.
    한편 정부의 중요한 관민공동위원회의 공동(민간)위원장으로서 정부의 정책수립과 조정에도 참여하고 있는 바 2010년 11월부터 2016년 7월말까지 제2기 중장기전략위원회의 공동위원장으로 선출되어 정부의 중장기 전략수립에 깊이 참여하였다.

    2015년 2월 26일
    7만여 회원사를 대표하는 한국무역협회 회장으로 선출되어 우리 기업들이 글로벌 기업가 정신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고 우리나라를 ‘세계일류의 기업형 국가’로 발전시키고자 노력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한국경제 각 분야에 걸친 집필, 기고, 강연활동도 계속 하고 있다.
    한편 공직 재임기간에는 중앙공무원교육원과 중앙대학교 국제경영대학원의 객원교수를 역임했고, 공직 퇴임후에는 세종대학교에 출강한 바 있다.

  III. 외환위기와 관련
    그는 공직을 떠난 직후부터 외환위기에 대한 책임문제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1999년 8월 법원의 1심판결에 이어 2002년 10월 항소심판결은 그에게 일체의 법률적 책임이 없음을 확인한바 있고, 2004년 5월 27일 대법원은 이에대한 검찰의 상고를 기각함으로서 6년 여에 걸친 외환위기에 관한 사법심사를 종결하고 그에게 일체의 법률적 책임이 없음을 최종 확인하였다. 또한 2005년 5월 31일 서울 고법 형사3부는 그에대한 국가의 형사보상결정을 내림으로서 약 7년에 걸친 사법절차가 완료된 바 있다. 그간 그는 이런 사법절차의 진행과 관계없이 외환위기의 원인 및 배경과 당시 경제정책의 당부에 대해서는 언젠가는 역사가 모든 것을 밝힐 것이라는 자세로 다양한 집필, 강연등을 통해 그가 생각하는 외환위기의 원인과 배경, 한국경제의 위기 극복방안에 대해 그의 생각을 정리 발표하고 있다. 외환위기에 관해 그가 집필하거나 강연한 내용들은 외환위기자료실의 관련강의,강연,기고부분에 정리되어 있고 특히 그의 책임론과 관련한 그의 생각은 1심 법정 최종진술 중 해당부분에 잘 나타나 있다.

  IV. 인물평 등
    합리적인 성품에 논리정연한 理論展開로 설득력있는 언변을 구사하며 국내 유수대학의 정규과정 및 고위경영자과정, 각종 경제단체 등에서 한국경제 각 분야에 대한 강의를 해 오고 있다. 또한 미국에서의 유학생활과 경제협력관 및 많은 국제회의와 협상대표경력 등을 통하여 일찍이 국제감각을 익혔으며 개방적이고 진취적인 업무스타일과 매너가 몸에 배어 있다.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는 무섭게 강한 추진력을 보이나 의사결정과정에 있어서는 부하직원들과 충분한 토의를 거치는 장점이 있어서 따르는 경제관료가 많다. 특히 4만에 가까운 직원들과 거대한 노조가 있는 방대한 철도조직을 성공적으로 이끌었고 민간연구소가 존립하기 매우 어려운 우리나라 풍토에서 연구(research)본연의 기능에 충실한 시장경제연구원을 설립, 10년 이상 운영하고 있어 경영자로서의 자질도 인정받고 있다.

  V. 집필, 기고 등
    저서로는
    "경쟁이 꽃피는 경제" (공정거래위원회 刊, 1997)
    "시장으로의 귀환"(국가경영전략연구원 刊, 1999)
    “시장원리와 한국의 경제운용” (중소기업연구원 刊, 2008)
    “길을 두고 왜 길 아닌 데로 가나” (시장경제연구원 刊, 2010)
    4권이 있다.

    먼저 두 책자에는 구조적 시각에서 본 한국경제에 대한 분석과 대응 방향에 관한 그의 각종 강연과 기고문 등이 수록되어 있는 바, 세계속에서 한국경제가 선택해야 할 방향 등 그의 한국 경제관을 잘 보여주고 있다.

    세 번째 책은 중소기업연구원장 재직시 동 연구원의 초빙연구원으로 있던 동국대학교 김종일 교수와의 공저이다.
    오랜 공직생활을 통한 실무경험과 연구 활동을 통한 이론적 통찰을 바탕으로 한국경제의 현 좌표를 시장원리의 구현이라는 관점에서 평가하고, 주요 현안 문제의 해결방향을 시장원리에 입각하여 제시한 책이다.

    네 번째 책은 2002년 7월부터 월 1회 『한국경제신문, ‘다산칼럼’』에 정기 기고한 칼럼 약 60개와 기타 언론에 기고한 칼럼 등을 모아 경제정책의 각 분야별로 재편성 2010년 8월 발간한 것으로서 경제 각 분야의 구조적 개선 방향에 관한 그의 생각이 잘 정리되어있다.

  VI. 종교, 가족관계 등
    독실한 크리스찬으로 우리나라의 기독교농촌운동의 선구자로 불리우는 故 金英煥 목사와 崔敬愛 권사의 차남이며 부인 李眞子 여사와의 사이에 결혼한 1남1녀와 손녀, 외손자가 있다. 취미는 음악감상으로 특별한 경우 외에는 KBS교향악단의 정기연주회를 거르지 않을 정도로 고전음악을 좋아하며 2001년 2월 2일에는 KBS교향악단의 2001년 신년음악회에서 차이코프스키의 '슬라브행진곡'을 성공적 객원 지휘 하였다. 이는 KBS교향악단 역사상 아마추어에 의한 최초의 특별지휘로써 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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