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 Document
Untitled Document
Untitled Document
Untitled Document
프로필
HOME > 프로필
 


  Ⅰ. 걸어온 길
  • 1942년 경남 밀양 출신으로 경기 중·고등학교와 서울법대를 졸업했다. 공직 재직 중 미국 시라큐스대학 맥스웰대학원에 유학, 행정학 석사(MPA)를 취득하고 경제학 석사과정도 수료했다. 대학재학 중 군복무를 필했다.
  • 1966년 행정고시 4회에 합격하여 1967년 1월 경제기획원에서 사무관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하여 동 기관에서 물가정책국장, 경제기획국장, 차관보, 대외경제조정실장 등 경제정책 입안의핵심 직책을 두루 거치며 정통 경제 관료로서의 길을 걸었다.
  • 1992년 이후 환경처차관, 한국소비자보호원장, 철도청장, 장관급으로 격상된 공정거래위원회 초대 위원장,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장관급)으로 재직하는 등 주요 공직을 거친 후 1997년 11월 공직을 떠났다.
  • 그 후 약 10년의 기간 동안 (사)국가경영전략연구원 원장, (주)와이즈인포넷 회장, ‘법무법인 세종’ 부설 시장경제연구원 운영위원장과 (재)중소기업연구원 원장을 역임했다.
  • 2008년 4월 그간 재단법인으로 새로이 출범해 있는 시장경제연구원의 이사장에 취임하여 현재까지 재임 중이다.
  • 2010년 3년 임기의 정부의 소비자정책위원회의 공동(민간)위원장으로 위촉되어 활동했고 2014년에는 정부의 제2기 중장기전략위원회 공동(민간)위원장을 맡았다.
  • 2015년 2월 한국무역협회 회장으로 선출되어 활동하다가 2017년 11월 16일 임기를 3개월여 남겨 둔 시점에서 동 직을 사임하고 다시 시장경제연구원 이사장의 직무에 전념하고 있다.
  • 한편 공직 재임기간에는 중앙공무원교육원과 중앙대학교 국제경영대학원의 객원교수를 역임했고, 공직 퇴임 후에는 세종대학교에 출강한 바 있다.
  • 정부로부터 홍조근정훈장(87년 12월 10일), 황조근정훈장(93년 12월 16일)을 받았다. 서울법대 총동창회에 의해 ‘자랑스러운 법대인’에 현창(2018년 5월 31일) 되었다.
  • 고전음악 애호가로 2001년 2월 2일 KBS교향악단 ‘신년 특별음악회’에서 아마추어로서 역사상 처음으로 이 교향악단을 지휘하여 차이코프스키의 '슬라브 행진곡'을 연주했고, 2016년 7월 15일 무역협회 ‘70주년 창립기념음악회’에서 강남심포니 오케스트라의 특별지휘자로 차이코프스키의 '슬라브 행진곡'과 앵콜곡으로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 제3막의 전주곡을 지휘한 이색적인 경력이 있다.
  • 가족으로는 부인(이 진자)과 아들 광진((주)LG 디스플레이 상무), 며느리 이 성희와 딸 광주, 사위 오 정우(연세대 공대 교수)가 있다.
  Ⅱ 경제, 사회 발전에 기여한 역할과 활동
  • 1985년 2월부터 1988년 1월까지 만 3년 동안 경제기획원의 최장수 물가정책국장으로 재임 당시 물가에 대한 정부의 각종 규제를 대폭 완화하고 시장원리에 입각한 물가정책 기조로의 획기적 전환을 추진하면서도 한국 역사상 가장 안정된 물가수준을 시현함.
  • 물가정책국장 당시 소비자정책의 주무국장으로서 당시 선언적 성격에 불과하던 「소비자보호법」을 보다 체계적이고 실체적인 내용으로 전면 개정하고 「약관규제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여 오늘날과 같이 정비된 소비자 보호체계를 확립하는 동시에 한국소비자 보호원의 설립을 주도함.
  • 1989년부터 1990년까지 경제기획원의 경제기획국장, 차관보로 재직하면서 토지공개념 3법의 입법 작업을 위한 범부처 국장급으로 구성된 task force의 장으로서 입법과정의 실무책임을 수행함. 한편 당시 추진하다 중단된 금융실명제 등 경제개혁 작업의 실무책임자로 활동함.
  • 1990년부터 1992년까지 경제기획원 대외경제조정실장 재직 시 UR대책실무위원장, EC통합대책실무위원장, 북방경제실무부위원장 등 범정부차원의 대외경제정책 실무책임자로서 ‘한국경제의 국제화 추진본부장’의 역할을 담당함. 남북대화과정에서는 총리회담 교류협력분과위원회의 부위원장으로 북한 측과 9차에 걸친 협상을 통해 교류협력분야 합의서를 작성하는 등 남북경제협력의 주역을 맡음.
  • 1992년 6월부터 환경처차관으로서 UNCED이후의 국제 환경여건에 대처하기 위한 지구환경책의 수립, 1992년 입법 완료된 6개 주요 환경관련 법률의 제·개정, 환경기술개발원의 설립등의 업적을 남김.
  • 1993년 4월 한국소비자보호원장을 맡아 그가 물가정책국장 재임 시 시작한 시장경제 체제에 있어서 소비자 문제의 본질과 중요성에 대한 규명과 소비자 정책의 발전에 몰두하였음. 그는 당시 소비자 문제를 중심으로 한국경제의 문제를 구조적으로 깊이 생각하기 시작했고 이 때 소비자 중심의 경제구조의 구축 없이는 진정한 의미의 경쟁구조의 정립도, 경제의 국제화도 불가능하고 이런 구조 하에서는 원천적으로 경쟁력이 생길 수 없다고 결론지으면서 ‘소비자중심의 경제구조’가 시장경제 체제의 핵심적 요소라고 하는 독특한 경제관을 정립하게 됨. "소비자주의", "소비자가 선택하는 경제", "국제화와 소비자주의" 등은 당시 그에 의하여 집필되거나 발표된 많은 기고, 강연 등에서 전개, 발전된 핵심적인 개념임. 이러한 사고는 생산자 중심의 사고에 익숙해있던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이었고 이후 각 분야의 정책결정을 소비자 중심으로 유도하는 데 크게 영향을 미쳐 종래 여성들의 운동 차원의 관심 영역에 머물던 소비자 문제를 경제정책의 핵심적 분야로 끌어올리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여 한국경제의 시장경제화, 소비자중심 경제구조로의 방향전환의 전기를 마련함. 제조물 책임 법리의 정립, 소비자 위해 정보 체계의 발전 등 소비자안전제도의 획기적 발전도 그의 소보원장 재임 시 이루어졌음.
  • 1994년 8월 철도청장으로 부임하여 ‘소비자중심 경제’의 경영적 버전인 ‘고객 중심경영’을 체계적으로 철도경영에 접목하기 시작함. 당시 철도청은 청장의 직접 지휘 하에 공기업으로는 처음으로 "고객중심경영혁신운동"을 전개하여 한 세기에 가까운 관청기업인 철도의 체질개선작업에 큰 성과를 거둠으로서 이후 모든 공기업 경영개혁의 모델이 되었음. 7. 당시 정부가 1996년 1월1일부터 철도청을 철도공사로 전환하려던 정책을 수정, 철도청 체제를 유지하도록 결정하자 그는 철도건설에 대한 국가의 지원체계의 정비와 민간경영기법의 도입 및 사업의 다각화, 철도경영의 자율성 보장 등 제반사항을 종합한 「국유철도의 운영에 관한 특례법」의 제정을 주도하여 기간교통수단으로서의 철도의 체계적 건설과 공기업으로서도 경영개선을 기해 갈수 있는 획기적인 법적 기반을 마련한 바 있음.
  • 1996년 3월8일 장관급으로 격상된 공정거래위원회의 초대 위원장으로 취임한 이후 위원회의 운영을 행정수요자 중심으로 전환하기 위해 제도 절차와 의식 및 관행의 개선을 기하고, 산업전반에 경쟁구조를 정착하기 위한 경쟁 제한적 법령과 제도 관행의 개선,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균형적 발전 및 협력관계 조성을 위한 경제력집중억제제도 개선과 각종 불공정거래행위의 조사 시정에 주력하였음. 그가 위원장 재직시 추진한 대기업의 상호채무보증제도 폐지, 내부거래규제 강화, 기업 결합 재무제표제도의 도입 등은 경제력집중억제제도에 있어서 획기적인 제도개선노력으로 평가받고 있고 IMF 외환위기의 극복 과정에서 김대중 정부에 의해 같은 방향으로 제도개편이 이루어졌음. 특히 공정거래 위원장 재임기간 중 그의 최대의 관심사항은 공공부문의 비경쟁적 요소를 어떻게 줄일 것인가에 있었고 이를 위한 법적 뒷받침의 정비(공정거래법 63조의 개정 등)등을 추진한 점은 특기할 만한 점임.
  • 1997년 2월 28일 장관급의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에 임명되어 한보부도사태 이후 드러난 우리 금융산업의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고자 당시 대통령 자문기구인 ‘금융개혁위원회’ 를 중심으로 진행된 금융개혁 작업에 있어서 주도적 역할을 하여 금융의 산업적 성격 강화, 금융의 시장기능 강화, 중앙은행제도 및 금융감독 제도의 개편 등 금융 산업의 구조개선에 결정적으로 기여하였음. 한편 평소 지론인 시장경제 질서 회복과 구조조정을 통한 우리 경제의 경쟁력의 본질적 제고를 위한 다양한 정책을 추진한바 경제 분야 정부규제 개선 체제의 정비, ‘21세기를 향한 한국 경제의 비전, 의 제시 등이 대표적임.
  • 외환위기 직전 1997년 11월 19일 경제수석 직을 사임하여 30여 년의 공직을 떠난 이후 현재까지 주로 민간의 연구 분야에서 다양한 직책을 맡아 한국경제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규명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연구와 집필 및 강연, 강의 활동을 계속하고 있음.
    • 1999년 9월부터 2000년 10월까지 국가경영전략연구원(National Strategy Institute : NSI)의 원장으로 재임한 바 이 기간 동안 그는 오랜 국정경영에 대한 경험을 토대로 민간의 시각으로 국가경영에 대한 다양한 정책을 제언한 바 있음. 대표적으로 “NSI의 정책대안 시리즈 -21세기 국가경영 시스템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를 월간조선과 공동으로 2000년 3월부터 동년 11월 까지 9회에 걸쳐 진행한 바 있음.
    • 2000년 10월부터 2001년 11월 까지 (주)와이즈인포넷의 회장으로서 공직퇴임 후 처음으로 민간 기업에 몸을 담은 바 기업과 정부기관을 대상으로 해외의 전문 경제·경영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한국경제와 경영의 국제화와 지식정보화에 기여하였음.
    • 2001년 4월 그는 법무법인 세종과 공동으로 시장경제연구원을 설립하여 2004년 4월까지 그 운영위원장을 맡음. 동 연구원은 경제적, 법률적 분석방법을 동시에 사용하여 복잡한 법적 분쟁에 있어서 문제의 다원적 본질에 접근하고 합리적 처방을 도출하려는 국내 최초의 체계적, 조직적 시도임. 한편 이 연구원을 통해서 시장원리를 근간으로 하여 한국경제를 발전시키려는 그의 평소의 구상을 연구, 각종언론에의 기고, 연구원 주관의 토론회, 세미나 등을 통해 제시하고 사회적 공론을 이루어 가려고 노력하였음. 특히 월간조선과 공동기획으로 「시장경제와 기업하기 좋은 환경,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2002년 8월부터 2003년 4월 까지 9회에 걸쳐 매월 진행했던 프로그램은 각계의 최고 지성들의 토론을 통해 국정 주요과제에 대해 합리적 대안제시와 사회적 공론형성을 위한 기획시리즈로 평가받은 바 있음.
    • 2004년 4월부터 2007년 7월까지 중소기업연구원의 원장으로 초빙되어 이 연구원을 명실상부한 국내 유일의 중소기업문제 전담 연구원으로 육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국경제의 최대의 과제로 대두된 중소기업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 경쟁력 위주의 중소기업정책, 중소기업의 국제화 등 정책 대안을 정부에 제시하면서 보호, 지원 위주의 기존의 중소기업정책의 획기적 전환을 촉구하였음.
    • 2008년 4월 독립재단으로 발전한 시장경제연구원의 이사장으로 취임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연구원을 경영하고 있음. 동시에 스스로 선임연구위원으로서 주요 대형 연구의 연구책임을 맡는 등 직접 연구 활동을 하고 있음. 이 기간 중 약 3년간 무역협회 회장을 맡았으나 연구원 이사장으로서의 역할은 계속함. 그는 이 연구원을 통해 시장원리에 입각하여 한국경제와 기업경영의 문제점의 본질을 규명하고, 각종 대안제시를 위한 연구 활동과 기업 등에 대한 자문활동을 지속적으로 해 오고 있음.
  • 정부의 중요한 관민공동위원회의 공동(민간)위원장으로서 정부의 정책수립과 조정에 참여 한 바 2010년 11월부터 3년간 소비자정책위원회의 공동위원장(정부측 : 공정거래위원장)으로 위촉되어 정부의 소비자 정책의 수립과 조정에 기여한 바 있고 2014년 10월부터 2016년 7월까지 제2기 중장기전략위원회의 공동위원장(정부측 : 경제부총리)으로 선출되어 정부의 중장기 전략수립에 깊이 참여하였음. 당시 그는 평소의 지론을 연구보고서로 체계화한 ‘경제시스템의 재정비 방안(2015.2)’을 제시하여 정부의 중장기전략의 기본 방향으로 삼을 것을 제안한 바 있음.
  • 2015년 2월 26일 7만여 무역업체를 대변하며 한국의 대표적인 경제단체의 하나인 한국 무역협회 회장으로 추대되어 한국의 무역진흥을 위해 노력했고, 나아가 우리기업들이 글로벌 기업가정신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고 우리나라를 ‘세계일류의 기업가형 국가’ 로 발전시키고자 노력한바 재임 기간 중 역점을 둔 사업은 다음과 같음
    • 무역협회 70년 역사를 바탕으로 한국무역의 미래 비전 제시
    • 한국 무역의 지속적 발전을 위해 서비스산업 각 부문의 수출산업화 등 정책대안 제시
    • 시장원리의 확충 및 ‘기업가형 국가’의 이론과 실현방안에 대한 체계적 연구, 이를 바탕 으로 다양한 정책대안 제시
    • 30년 된 무역센터의 구조개선 완료
    • 잠실에 국제적 규모의 MICE단지 건립 추진
  • 2017년 11월 16일 임기를 3개월 여 남겨 둔 시점에서 무역협회 회장 직을 사임하고 다시 시장경제연구원으로 돌아와 연구원 경영과 연구 활동을 재개하였고 지속해 온 한국경제 각 분야에 걸친 집필, 기고, 강연, 강의 활동도 재개함.
  III. 외환위기와 관련
  • 그는 공직을 떠난 직후인 1998년 1월부터 외환위기에 대한 책임문제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검찰은 외환위기와 관련 강경식 전 경제부총리와 그에 대해 형사책임을 물어 기소하였음, 1999년 8월 법원의 1심판결에 이어 2002년 10월 항소심판결은 그에게 일체의 법률적 책임이 없음을 확인한바 있고, 2004년 5월 27일 대법원은 이에 대한 검찰의 상고를 기각함으로서 6년여에 걸친 외환위기에 관한 사법심사를 종결하고 그에게 일체의 법률적 책임이 없음을 최종 확인하였음. 또한 2005년 5월 31일 서울 고법 형사3부는 그에 대한 국가의 형사보상결정을 내림으로서 약 7년에 걸친 사법절차가 완료된 바 있음.
  • 그는 이런 사법절차의 진행과 관계없이 외환위기의 원인 및 배경과 당시 경제정책의 당부에 대해서는 언젠가는 역사가 모든 것을 밝힐 것이라는 자세로 다양한 집필, 강연 등을 통해 그가 생각하는 외환위기의 원인과 배경, 한국경제의 위기 극복방안에 대해 그의 생각을 정리 발표해왔음. 외환위기에 관해 그가 집필하거나 강연한 내용들은 그의 개인 홈 페이지(www.ihkim.org) 외환위기 자료실의 관련강의, 강연, 기고부분에 정리되어 있고 특히 그의 책임론과 관련한 그의 생각은 1심 법정 최종진술 중 해당부분에 잘 나타나 있는바 2019년 11월에 출간한 그의 회고록 『명과 암 50년: 한국경제와 함께』 중 Ⅱ권에 상세하게 체계적으로 정리, 기술되어 있음.
  Ⅳ. 저서, 주요연구 보고서
  • 저서
    • "경쟁이 꽃피는 경제" (공정거래위원회 刊, 1997)
    • "시장으로의 귀환" (국가경영전략연구원 刊, 1999)
    • "시장원리와 한국의 경제운용“(공저) (중소기업연구원 刊, 2008)
    • "길을 두고 왜 길 아닌 데로 가나" (시장경제연구원 刊, 2010)
    • "Why Break Off From The Right Path?" (무역협회 刊 2015)
    • "시장이 살아 숨 쉬는 경제, 창조적 기업이 샘솟는 나라" (무역협회 刊 2017)
    • "김인호 회고록 『명과 암 50년: 한국경제와 함께』 Ⅰ,Ⅱ권" (기파랑 刊 2019)
    • 먼저 두 책자에는 구조적 시각에서 본 한국경제에 대한 분석과 대응 방향에 관한 각종 강연과 기고문 등이 수록되어 있는 바, 세계 속에서 한국경제가 선택해야 할 방향 등 그의 한국 경제관을 보여줌.
    • 세 번째 책은 중소기업연구원장 재직 시 동 연구원의 초빙연구원으로 있던 동국대학교 김종일 교수와의 공저임. 그의 오랜 공직생활을 통한 실무경험과 양 인의 이론적 통찰을 바탕으로 한국경제의 현 좌표를 시장원리의 구현이라는 관점에서 평가하고, 주요 현안 문제의 해결방향을 시장원리에 입각하여 제시한 책임.
    • 네 번째 책은 2002년 7월부터 월 1회 『한국경제신문, ‘다산칼럼’』에 정기 기고한 칼럼 약 60개와 기타 언론에의 기고문 등을 모아 경제정책의 각 분야별로 재편성 2010년 8월 발간한 것으로서 시장원리를 바탕으로 한 한국경제 각 분야의 구조적 개선 방향에 관한 그의 철학과 정책대안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책임.
    • 다섯 번째 책은 네 번째 책의 영문 번역판으로서 무역협회장으로서의 다양한 국제 활동과정 및 주요 외국인들과의 담화 시 외국인들의 한국경제와 무역에 대한 이해의 증진을 촉구하기 위해 활용됨.
    • 여섯 번째 책은 무역협회 회장 재임기간 동안 역점을 두어 했던 활동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정리한 책으로 주요강연, 주요언론기사, 언론과의 인터뷰 등을 내용으로 하고 있음. 특히 여러 언론들과의 대형 인터뷰는 그가 한국경제, 산업 무역을 보는 시각을 생생하게 보여 줌.
    • 일곱 번째 책은 최근 출간한 그의 회고록으로서 Ⅰ권: 영원한 시장주의자, Ⅱ권: 외환위기의 중심에 서다로 약 1000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기록이다. 아직껏 알려지지 않은 한국경제 현대사 중 그가 간여한 사안, 사건의 이면사를 많이 포함하고 있음.
  • 주요 연구 보고서*
    • KLS(Korea Lottery Service)사건을 보는 경제적 관점 (2009. 2)
    • 한·일 터널건설의 타당성과 효과적 추진 방향에 관한 연구 (2011. 2)
    • 시장경제 적 관점에서 보는 한국경제의 발전경험 평가와 정책 제언 (2012. 9)
    • 새로운 경제정책 방향의 모색 (2012. 10)
    • ICT기반 창조경제 실현을 위한 경쟁정책과 제도개선 연구 (2014. 10)
    • 경제시스템의 재정비 방안(제2차 중장기전략위원회 토의 과제) (2015. 2)
    • * 개인 명의의 저서에 더해 시장경제연구원의 많은 연구보고서 중 그가 선임연구위원으로서 직접 연구책임(PM)을 맡아서 수행했던 주요 대형연구의 결과물임
  Ⅴ. 종 합
  • 김 인호의 「한국경제관」
    • 그는 거시경제정책, 경쟁정책, 소비자정책, 산업정책, 기업정책, 국제화정책 등 경제정책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시장경제원리에 입각한 독보적인 경제관과 이론을 정립하고 있고 이를 바탕으로 공직에 있을 때는 다양한 경제정책의 입안과 시행을 통하여, 민간부문에서는 연구와 집필, 강연 등을 통한 정책 대안의 제시를 통해 한국경제의 구조적발전에 기여하려는 노력을 일관성 있게 계속해 왔음.‘경쟁이 꽃피는 경제’, ‘소비자가 선택하는 경제’, ‘선진국 되려면 선진국 줄에 서야한다’, ‘시장으로의 귀환’, ‘한국경제의 critical path서 기업가형 국가의 정립’등은 그가 스스로 그의 경제관을 집약 창안한 표어들임.
    • 그의 한국경제관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음

      「한국 경제문제의 본질은 ‘경쟁력에 적신호가 생기고 있는데 있다’
      그런데 이 경쟁력은 오로지 경쟁적 구조에서만 나온다. 한국사회가 보다 더 경쟁적구조로 바뀌지 않으면 한국경제의 경쟁력은 유지, 발전될 수 없다.
      이 경우 한국경제의 제 문제, 즉 성장, 고용, 분배, 복지의 어느 것도 해결될 수 없다.
      ‘경쟁적 구조’와 표리의 관계에 있는 것이 ‘소비자 중심적 사고’다. 소비자의 합리적이고 무한한 선택권이 보장되고 이러한 선택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기업경영, 경제운영을 불가피하게 하는 제도, 사고, 사상을 ‘소비자 주의’로 정의하며 이 ‘소비자주의’가 자리 잡혀야 한다.
      국제화는 외부 경쟁의 도입이라는 관점에서 주된 의미가 부여돼야 한다.
      국제화 역시 경쟁촉진, 소비자 중심적 사고와 상호 표리의 관계에 있다. 이러한 세 가지 사고가 자리 잡히면 정부와 시장 및 기업과의 관계의 재설정에 관한 논의가 불가피해진다.
      무엇보다도 경제에 있어서 정부의 바람직한 역할과 기능에 대한 깊은 반성이 필요하다.
      구체적으로 정부는 시장과의 관계에 있어서 무엇은 반드시 해야 하며 무엇은 반드시 하지 말아야 할 것인가를 가리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이상의 과정을 거쳐 궁극적으로 우리의 ‘경제시스템의 재정비’를 이루는 것이 진정으로 우리 정부나 정치권이 추구해야 할 과제다.
      기업들도 ‘글로벌 기업가정신’으로 재무장해야 한다. 정부도 이를 촉구하고 지원해야한다.
      정부가 시장과 정부의 관계를 중심으로 경제시스템을 재정비하고 기업들이 글로벌 기업가정신으로 재무장하면 ‘나라에 좋은 것이 기업에도 좋고, 기업에 좋은 것이 나라에도 좋다’라는 조건이 성립되는 국가 즉 ‘기업가형 국가’의 정립이 이루어질 것이며 이러한 형태가 한국경제가 중장기적으로 또 구조적으로 발전해 갈 수 있고 한국경제가 당면하고 있거나 앞으로 부닥칠 수많은 경제 문제가 경제시스템 내에서 조화롭게 해결돼 갈 수 있는 이상적 경제의 모습이다」

    • 그가 이러한 한국경제관을 정립하게 되고 50년 이상의 장구한 기간 공공, 민간의 양 부문에서 한국경제의 다양한 문제의 해결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것은 서울법대에서 받은 법학 기초교육과 그 뒤 외국의 대학원 교육을 통해 얻은 경제학과 행정학의 학문적 바탕이 있기에 가능했음, 그는 이 세 학문의 학제적 이해와 현실 문제와의 복합적 관계에 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양자의 조화를 통해 다양한 경제·사회 문제를 해결하려는 집요하고 일관된 노력을 기울여 왔음.
  • ‘시장주의자’, ‘관료의 틀을 벗어던진 정통 경제관료’, ‘영원한 공인’
    • 언론은 그를 흔히 ‘시장경제의 전도사’라고 부름. 이에서 보듯이 그는 경제관료 출신으로서는 드물게 관계, 학계, 경제계, 언론계에서 한국의 대표적인 “시장주의자”로 인정받아 왔음. 그의 공·사 모든 직책에서의 활동과 역할, 언론 등에의 무수한 기고, 각 급 학교, 기관, 단체 등에서의 다양한 주제의 강의, 강연 등이 이러한 기본적 사상에 기초해 일관성 있게 전개돼 왔기 때문임.
    • 그는 공직에 있는 동안 정통관료로서의 길을 걸었지만 공직기간 동안 정립된 확고한 경제관을 바탕으로 관료로서의 한계를 넘어섰고 나아가 관료주의가 갖는 한계, 문제점, 폐단에 대해 수시로 진지하게 문제를 제기하였고 그의 이런 성향은 그 이후 민간부문에서 더욱 심화되고 있음. 이런 의미에서 그는 “관료의 틀을 벗어 던진 정통 경제관료”라고 말할 수 있음.
    • 그는 그가 걸어온 길, 공·사 부문에서 한 역할과 기여가 말 하듯이 스스로 “영원한 공인"으로 기억되기를 원함. 무역협회 회장직을 사임하면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밝힌 바 임. 그 인터뷰에서 그는 “나는 정부를 위해 일했지 정권을 위해 일 한 적이 없다”고 말한바 이는 공직에 있을 때나 민간부문에 있을 때나 그의 최고의 관심은 공익(public interest)으로서 정권과 연계해서 공직에 관심을 표시한 적도, 정권의 향배에 따라 소신을 바꾼 적이 없음을 강조한 것임. 공직에서 물러난 이후 그는 오랜 경제부처 경력에도 불구하고 무역협회 회장직 이외에는 정부와 직·간접적 관계에 있거나, 정부의 영향력 하에 피임되는 어떤 직책도 맡은 바없음.
  • 개인 웹 사이트의 운영
    • 한국의 관료 출신으로서는 거의 유일하게 이 개인 홈 페이지(www.ihkim.org)를 운영하고 있음. 그는 이 사이트가 시장경제에 대한 국민적 인식의 증진을 유도하고 시장원리에 입각한 다양한 정책대안의 공론화를 시도하면서 각급 각종 경제교육의 장으로도 활용되기를 기대하고있음.
 
 
Untitled Docu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