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일미래 제4호 권두언>
단일경제권을 지향해야 할 한·일 양국경제, 이를 위한 전제조건
시장경제연구원 이사장 김인호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이 잡지의 권두언으로 필자는 창간호부터 한·일 양국 경제관계의 바람직한 방향 설정을 위한 일련의 논의를 전개해 왔다. 특히 2, 3호에서는 각각 한국과 일본의 경제를 편견 없이 분석해 보고 한계점에 도달한 양국의 경제의 현황에 대해 정리, 기술하면서 양국 공히 이런 상황을 돌파하기 위한 특단의 대내 개혁, 대외 협력 증진의 필요성을 제시해 왔다. 이번 호에서는 마지막으로 이런 문제의 해결방향으로서 필자의 지론인 단일 경제권을 지향해야 할 한·일 두 나라 간 경제관계의 흐름을 개관하고 바람직한 미래방향을 모색하면서 이를 성취하기 위한 조건을 생각해 본다. -----------------------------------------------------------------------------------------------------------
1. 경제적 측면에서는 한․일 양국은 궁극적으로 단일 경제권을 형성해야한다. 글로벌 경제 환경이 빠르게 변하고 국경보다‘경제영토’개념이 확산되면서 동아시아 경제의 중요성이 더욱 주목받고 있다. 그런데 동아시아 경제는 한국과 일본의 주도적인 역할을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다. 특히 세계경제에서 중국경제의 위치나 팽창의지를 고려하고 이 현실을 긍정적으로 수용하면서 중국과 적절한 관계를 유지하고 동아시아 경제발전의 최대 걸림돌인 북한의 존재에 적절히 대응하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한국과 일본이 단일 경제권 형성을 지향하는 획기적인 관계 증진 노력이 필요하다. 더욱이 한계점에 도달한 양국의 경제 상황을 고려할 때 양국 공히 대내적으로 구조개선 노력을 기울이는 한편 대외적으로 획기적인 새로운 접근을 시도해야 될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양국이 단일경제권을 형성하는 것이 그 해답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를 통해 양국 공히 경제의 규모와 질을 높이는 동시에 Global South 등 대외 시장 개발에 힘을 합쳐야 할 필요성에 직면하고 있다. 만약 한국과 일본이 단일 경제권을 형성한다면 미국, 중국, EU와 더불어 세계 최대 경제권의 하나가 되어 양국경제의 발전은 물론 동아시아 안보정세의 안정에도 획기적인 토대가 될 것이다.
2. 한·일 양국 간 경제관계의 변천과정과 향후 가야 할 방향을 간략히 살펴본다. - 1965년 한일관계 정상화 이후 경제관계는 교역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한일 양국 간 교역규모는 2011년 1,000억 달러를 돌파하며 최고치를 기록한 후 감소세로 반전, 2024년에는 772억 달러를 기록하고 있다. 한국의 무역적자는 2010년 최대치 361억불을 기록한 후 감소세로 전환하여 2024년에는 180억불 수준에 머물고 있다. - 그간 양국 간 산업협력은 일본의 산업적 절대 우위를 바탕으로 산업간, 수직적 협력이 주를 이뤄왔고 따라서 양국은 오랫동안 서로를 zero-sum게임의 경쟁상대로 인식하여 왔다. - 그러나 양국은 이제는 단일 경제권을 지향하는 21세기형의 포괄적 경제협력의 새로운 모델을 모색해야 될 것이다. 양국 경제관계의 잠재력을 감안할 때 양국 간 교역관계는 과거 정점에 있었던 때 보다 규모나 내용에서 크게 능가하는 상황을 만들어 가야할 것이며 산업협력의 경우 한국의 발전된 산업 경쟁력을 바탕으로 서로를 plus-Sum, 즉 협업(collaboration)의 파트너로 인식하면서 다양한 형태의 훨씬 고양된 관계로 발전돼야 할 것이다. 한국의 산업수준이나 규모의 발전 정도를 감안할 때 한국의 대기업과 일본의 '소·부·장' 기업 간의 협력이나 일본의 제조업과 한국의 IT기업의 연합 등 협력의 여지는 무궁무진할 것이다. 한국무역협회는 산업분야의 구체적인 협력대상으로서는 AI, 양자컴퓨팅, 바이오 분야, 반도체 분야, 자원·에너지·공급망 분야, 수소산업 분야 등을 거론하고 있다. 모두 세계 경제를 이끄는 신산업 분야로서 협력의 여지가 매우 크고 양국 모두 win-win할 수 있어 구체적 협력방안이 검토될 수 있다고 본다. - 결과적으로 4차 산업혁명을 향한 글로벌 레이스에 양국이 손을 맞잡고 융합의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시대적 요구에 공동 부응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스타트업과 첨단 기업부문에서 양국 간 상호 진출과 교류가 활발해지고 있고 문화부문에서도 같은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그 싹이 될 수 있다고 보아 고무적인 현상이다. - 이런 방향으로의 진전은 북핵 문제의 해결과 한·미관계의 증진을 위한 선행 조건으로 한·일 관계의 정상화와 관계 증진이 필요하다는 미국의 기대에도 부응하는 것이다. 나아가 한·미·일 협력이라는 두 나라의 안보와 경제의 병행발전을 위한 최선의 국제적 연대를 구축하는 전제이기도 하다.
3. 양국 정부는 단일경제권의 형성을 뒷받침 할 제도적 인프라의 구축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교류 협력의 증진이나 산업협력의 활성화를 위해서 정부가 할 일은 구체적인 협력 분야의 선정이나 방안이 아니고 제도적 인프라를 갖추는 것이다. 이런 틀이 갖춰지면 구체적인 협력분야, 추진방향, 방안은 양국 기업들 간의 긴밀한 협의, 협력에 의해 자율적으로 결정돼 갈 것이다. 이 제도적 인프라의 골자는 결국 양국 공히 보다 적극적인 시장 개방과 대외협력 과정에 존재하는 불필요한 규제를 최소화하는 방향이 될 것이다. 우리 한국이나 일본 공히 이런 방향의 채택이 경제발전에 궁극적으로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믿음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우리 한국의 경우 개방 과정에서 잃을 시장 보다 새로이 얻을 시장이 훨씬 크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일정 분야에서 부정적 효과가 불가피하게 발생하겠지만 이런 문제점은 국내정책의 조정 등에 의해 해결해 가야할 과제라는 것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중요하다. 우리 한국은 이미 중국 주도의 세계 최대 규모의 다자간 경제협정인 RCEP(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 협정) 에 가입한 데 이어 일본 주도의 CPTTP(환태평양경제동반자 협정)에 적극적으로 가입하려는 노력과 동시에 오랜 현안인 한일FTA 재협상을 병행함으로써 고도의 통상 룰 메이커로서 한일경제관계 정상화, 나아가 역내 개방적 지역주의 신장의 효과를 최대한 누리도록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리라고 본다. 이 과정에서 국가 간 이해의 차이, 국내 정책과의 조화를 추구하는 과정에서의 갈등이 없을 수 없지만 앞에서 이야기 한 바와 같은 두 나라는 큰 틀에서의 국가 이익을 염두에 두고 추진해야 할 것이며 우리 한국은 더욱 그러하다고 본다. 이 두 다자간 협정의 상세한 내용이나 한일FTA의 세부적 내용 등은 이 글에서 깊이 언급하기에 너무 전문적인 측면이 많아 생략하고자한다.
4. 양국의 단일경제권 형성을 가능케 하는 전제조건 한·일 양국이 단일경제권 형성할 만한 획기적 경제관계의 개선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그 전제조건으로서 양국 지도자를 비롯한 양국 국민 모두가 양국 관계를 보는 기본 인식이 새롭게 정립돼야 한다고 필자는 믿는다. 첫째는 양국이 각각 가지고 있는 역사에 대한 콤플렉스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일본은 고대사에 대해, 한국은 근대사에 대해 갖는 콤플렉스가 그것이다. 상호 이 콤플렉스에서 벗어나는 것이 경제를 비롯한 양국관계의 궁극적 개선을 위한 선행조건이라고 생각한다. 둘째로, 양국은 오랫동안 불구대천의 원수 같은 국가로 지나온 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사실 「1500년이 넘는 긴 시간의 양국 관계는 기본적으로는 호혜와 협력의 역사이며 그 관계가 위협을 받을 정도로 문제가 있었던 기간은 상대적으로 짧았다. 역사에 의하면 호혜와 협력의 관계가 지속될 때에는 두 나라가 공히 경제적으로도 번영했고, 반대로 두 나라 사이에 금이 가고 갈등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한국은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고, 일본 역시 결과적으로 국가적 위기를 맞았고 경제적 어려움도 면치 못했다.」라고 문화사학자 유홍준씨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일본편」에서 쓰고 있다. 셋째로 양국 경제가 추구해야할 개혁과제가 본질적으로 공통적이라는 데에 대한 인식이다. 한·일 양국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그리고 국제협력의 가치와 이념을 공유하고 있다. 이 가치와 이념이 양국의 경제 시스템과 정책, 그리고 기업 활동에 실질적으로 구현될 때에만 양국은 공히 당면하고 있는 많은 문제점들을 치유하고 발전을 지속해 나갈 수 있다. 동시에 양국 경제 관계 역시 이 바탕위에서만 진정한 진전이 이뤄질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양국 모두 이런 원리와 사실상 상당한 거리가 있는 경제시스템 하에서 경제운용과 기업 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이 것이 양국 공히 경제의 추가적 발전을 가로 막고 있는 결정적 요인이라는 사실에 대한 깊은 인식이 필요하다. 넷째로 양국 정부를 비롯한 지식인 사회의 인식이 먼저 개선되고 나아가 국민 교육적 기능을 다 하는 것이다.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우리 한국 정부와 정치권은 국민 정서니 여론이니 하는 데 매몰되지 말고 우리 국민들에게 실질적으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과거사 문제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과감히 떨쳐 나와 미래를 향해 양국 간 관계를 근본적으로 개선해 가는데 있어서 우리 한국이 보다 적극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을 국민들에게 환기시키고 간곡하게 당부하고 설득하는 의지와 능력을 발휘해야 한다. 그간 우리 한국의 경우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지도자들 대부분은 3·1절 기념식, 8·15 건국절 기념행사 등 기회를 ‘반일 종족주의’에 입각하여 대일감정을 자극하는 기회로 삼고 이를 정치적 자산으로 삼아왔다. 문재인 대통령에 이르러서는 그 극에 달했다. 이것이 한국의 정치지도자들의 수준이고 이에 좌우되는 국민의식 수준이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최근까지도 회기적인 개선의 징후는 보이지 않고 있었다. 물론 일본의 정치권, 사회 지도자들의 상응하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일본 정부와 정치권 역시 일본 국민들에게 과거 전체주의, 군국주의 시절, 더욱이 인간의 양심과 이성이 마비된 상태의 참혹한 전쟁시절에 있었던 불행한 과거사를 오늘의 자유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인 일본인들이 좀 더 솔직히 인정하고 과거의 불행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결의를 다지고 이를 대외적으로도 천명하도록 설득하고 촉구하는 데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어느 측이 됐건 먼저 손을 내미는 측이 이기는 것이다. 우리가 먼저 손을 내미는 결단을 할 수는 없을까? 윤석열 대통령 정부에 이르러 비로소 갈등과 마찰로 점철된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화해와 번영의 미래로 나아가는 발걸음을 시작했다. 그러나 정치권, 시민사회 등의 변화되지 않는 폐쇄성, 국민의식 수준의 미흡 등으로 바람직한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은 데다 그간의 정치적 혼란으로 앞으로 예측불허의 국가적 격변기를 거칠 것이므로 장래를 낙관하기는 더욱 어려진 현실이다.
여기서 필자는 3·1 독립선언서의 한 구절을 인용하고자 한다. 오늘을 사는 우리들은 100년 이상 전에 살았던 우리 선조들의 의식수준에도 전연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깊은 반성이 필요하다. 「스스로를 채찍질하기에도 바쁜 우리에게는 남을 원망할 여유가 없다. 우리는 지금의 잘못을 바로잡기에도 급해서, 과거의 잘잘못을 따질 여유도 없다. 지금 우리가 할 일은 우리 자신을 바로 세우는 것이지 남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다. 양심이 시키는 대로 우리의 새로운 운명을 만들어 가는 것이지 결코 오랜 원한과 한순간의 감정으로 샘이 나서 남을 쫓아내는 것이 아니다.」 감정적 반일주의로 국민의식을 오도하고 이를 정치적 자산으로 삼으려는 무리들에 의해 포획되고 퇴행적 역사의식으로 진정한 선진화의 길을 포기하는 국민들로 남을 것인가? 한·일 양국 앞에 놓인 상호 번영의 win-win하는 경제적 가능성과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는 경제공동체의 꿈을 포기하고 이 정도 수준의 경제에 머물 것인가? 선택은 우리들 국민의 몫이다.
이러한 전제조건이 충족되고 단일 경제권을 지향하는 방향에 양국 정부와 국민이 뜻을 같이하는 경우 양국 앞에는 건강하고 활성화되는 번영하는 경제가 약속될 것이다. 그런 미래가 보이게 될 때 비로소가 우리가 그렇게 소망하는 한․일 터널의 건설도 가시권에 들어 올 것이다. 이에 대한 양국 지도자의 정치적 결단이 이뤄지고 각 분야의 양국 전문가들 사이에서 다양한 분야에 걸친 진지하고 실질적인 논의와 협력의 장이 열리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