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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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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터뷰] 인기 없어도 ‘대안없는 정책’ 펼쳐야
주관기관/행사명   이코노믹리뷰 발행일자   2001/05/15 조회수   0
  말로만 시장경제 외쳐선 의미 없어 … 당대에 정책 평가 받는 것은 무리

80년대 ‘영국병 치유’를 제일의 국정목표로 삼았던 대처 수상은 복지정책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의 시위에 “다른 대안이 없다”며 개혁을 단호히 고수했다. 지금 영국병은 과거의 향수일 따름이다.


국민의 정부가 내건 개혁정책들이 휘청거리고 있다. YS 정부 시절 공정거래위원장, 경제수석 등 ‘화려한 관료’의 길을 걷다가 나중에는 ‘환란주범’으로 재판정에 서야 했던 김인호 와이즈인포넷 회장은 “개혁을 당대에 평가받고자 하는 조급증이 불러온 결과”라며 “자제력을 가진 정부”가 될 것을 주문했다.
지난해 정보콘텐츠 업체인 와이즈인포넷 회장으로 영입돼 화제를 모았던 김전수석은 최근 시장경제연구원 운영위원장을 맡으면서 활동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

- DJ 정부의 인기가 계속 떨어지고 있습니다.
“인기 있는 정부를 목표로 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입니다. 당대에 ‘열매’까지 누리려고 해서는 곤란해요. 오히려 국민에게 인기가 없어야 합니다. 한 가정에서 집안의 형편을 100% 공개하고 허리띠를 졸라매자고 말하는 가장이 인기가 있을 리 없지요. 그러나 이렇게 해야 집안 경제가 살아나는 것입니다.”

- 가장 큰 문제는 무엇입니까.
“정치적 리더십이 취약하기 때문입니다. 경제회생에 대한 원칙과 시나리오를 세웠다면 다소 고통이 따르더라도 일관성 있게 이를 진행해야지요. 현재 여건에서는 시장경제 원리에 입각한 경제운용이 가장 확실한 대안이라고 봅니다.”

- 정부도 역시 틈만 나면 시장경제를 펼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만.
“경제운용을 맡은 사람이 레토릭(수사)으로, 혹은 남들이 하니까 시장경제를 한다는 식으로 나와서는 안됩니다. 시장경제론자라고 말은 하지만 참견하기를 너무 좋아해요. 시장경제는 시장에 대한 신뢰에서 출발합니다. 시간이 지나더라도, 짜증이 나더라도 시장원리가 제대로 작동된다는 믿음과 인내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있으면 불안해하는 관료의 속성이 시장에 대한 불필요한 간섭으로 이어집니다.”

- 그렇다면 시장경제를 내세우고 있는 정부로서 가장 먼저 배워야 할 덕목은 ‘자제력’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국가도 하고 싶고, 국민도 원하는 일이지만 참을 줄 알아야 합니다. 인내와 자제력, 그리고 참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정치적 리더십입니다.”

- 대표적인 정책실패 사례로 의료보험 문제를 들 수 있을텐데 어떻게 보시고 있는지.
“정부가 나서서 (경제적 능력이 있는) 정주영 씨 건강까지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스스로 위험을 책임질 수 있는 50%의 인구에 대해서는 시장에 맡겨야 합니다. 시장경제를 한다고 해놓고 본질은 그렇지 않아요. 마치 방향이 어긋난 바퀴를 억지로 꿰어 맞추고 달려가는 마차의 모양새입니다.”

- 현대 문제도 무리수가 잇따른다는 비난이 있습니다.
“현대가 왜 남북문제를 떠맡아야 합니까. 남북관계 진전이라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금강산 사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면 그 비용은 정부가 부담해야지요. 이것이 안되다 보니 나중에는 정부가 나서서 계열사 지원까지 끌어내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1차 책임은 기업의 영역을 넘어서 다른 욕심을 가졌던 현대에게 있고, 자신의 관심사에 기업을 끌어들였던 정부 역시 책임을 면할 수 없습니다.”

- 최근 우리 경제의 미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성장률 목표가 하향 조정되는 등 빨간 불이 켜지고 있습니다. 현 상황을 진단한다면.
“서울대 이면우 교수는 IMF를 ‘역사가 준 신의 선물’이라고 말했습니다. 퇴화된 의식구조를 바꿀 계기를 마련할 절호의 기회라는 의미에서지요. 이것이 IMF를 어떻게 인식하고 받아들였느냐의 차이입니다. 현 정부는 그 찬스를 인식하지 못하고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IMF를 재단하고 말았습니다.
더 큰 불행은 결과가 이상하리만치 좋았다는 것입니다. 병이 있으면 겉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제 병을 아는 사람은 스스로 조심하게 행동해서 오히려 오래 삽니다. 건강한 사람이 오히려 일찍 죽는 경우가 많지요.‘지표’만 믿고 골병이 드는 줄 모르는 거지요.
6~7% 성장률만 해도 그렇습니다. 외국에서는 2% 성장만 해도 ‘낫 배드(Not Bad)’인데 우리는 아직도 성장률 신화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상시적 퇴출 시스템이 작동했을 때는 3~4% 성장이 정상입니다. 경쟁력이 처지는 기업들까지 억지로 기업활동에 참여시켜야 8% 성장이 나오는 것입니다.”

- 그렇다면 경제팀 구성에 문제가 없습니까. DJ 정부 경제팀에 대해 평가를 한다면.
“현정부에서 동원할 수 있는 최선의 사람들 아닌가요. 문제는 이미 경제정책을 넘어선 것입니다. 국가의 방향이 어디로 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 개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정부 역할을 규정하는 일과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보입니다. 기구를 줄이고 사람을 자르는 것은 개혁이 아니라 '횡포'입니다. 정부는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분하고 이를 지켜야 합니다. 아울러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시장경제는 불가능합니다.
최근의 구조조정을 보면 개혁의 대상을 구경꾼으로 두고 기업과 금융만 운동장에 집어넣은 것입니다. 국민은 오로지 피해자라는 인식만 심어주었으니 무엇을 요구할 수 있겠습니까. ‘나도 잘못을 했다’는 인식을 가지고 문제에 접근하는 지도자가 있었다면 결과는 달랐을 것입니다.”

- 미국과 일본의 경기가 우리 경제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한나라 차원의 경제회생 노력은 많은 한계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시장경제에서는 호황과 불황이 엎치락뒤치락하게 마련입니다. 미국경제가 ‘10년 내리 호황’이고 일본이 ‘잃어버린 10년’을 말한다면 이것은 시장경제의 속성이 변질된 것입니다. 불황을 겁내는 것이 아니라 이를 구조조정으로 이어지게 하는 구조가 돼야 합니다. 대외노출이 불가피한 글로벌 경제에서는 해외부문의 영향을 받기는 받되 적게 받고, 더 빠르게 회복되는데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 우리는 주위에서 많은 이들이 실직당했을 때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배경(빽)이 없어서’라는 말을 하곤 합니다. 단적인 예입니다만 그만큼 시장경제가 우리나라 국민의 정서와 잘 맞지 않아 뿌리내리기 어렵다는 뜻이 아닐까요.
“개인주의와 경쟁 문화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우리나라는 경쟁과 능력 본위의 사회가 아닙니다. 대외침략이 많았기 때문에 피해의식이 강하고 많이 폐쇄적입니다. 그러나 확신이 있다면 ‘시장경제가 살길이다’고 앞에 나서서 설득해야 합니다. 귀에 좋은 ‘굿뉴스’만으로 구조조정을 성공시킬 수는 없습니다.
이런 면에서 김 대통령이 영국 대처 총리의 ‘TINA 원칙’을 교사로 삼았으면 합니다. 대처는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 ‘There Is No Alternatives(이것 외에는 대안이 없다)’라고 말하며 국민들을 설득했습니다. 그래서 대처의 별명은 ‘Mrs. TINA’가 되었지요. 인기없는 정책이었지만 대처의 정책은 옳았습니다. 더구나 재선을 할 것도 아닌데 대통령이 너무 인기에 연연해하는 것 같습니다. 역사를 통해 평가받아야 합니다.”

- 단기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묘약은 없습니까.
“단기 처방은 없습니다. 있지도 않으며 더더욱 바람직하지도 않아요. 지름길보다는 바른길을 모색할 때입니다.”

이상재 기자(bom@sewee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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