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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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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정기회원탐방] 김인호 회장의 음악사랑
주관기관/행사명   KBS오케스트라 11월 발행일자   2000/11/01 조회수   0
  천지가 온통 노랑물감을 뒤집어쓴 것만 같은 여의도의 가을, 시인이 아니더라도 모두의 대화는 그대로 시가 된다. 11월호 월간 KBS오케스트라는 이 같은 가을의 서정을 담고 오랜만에 정기회원탐방에 나섰다. 항상 깨닫는 것이지만 KBS교향악단 정기회원들은 참으로 다양하다. 초등학생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직업이나 생활양식 또한 천차만별이다. 그렇더라도 그들은 하나의 공통점에서 만난다. 모두 KBS교향악단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것이다. 이런 회원들 중에서 또다른 특별한 삶을 살고있는 정기회원부부로 1991년부터 매년 KBS교향악단 예술의 전당 정기회원에 가입하고 있는 前청와대경제수석이었으며 지난 10월9일 (주)와이즈인포넷의 회장으로 취임한 김인호씨(42년생)와 그의 부인 이진자 여사(40년생)를 소개한다.



가을이 깊어질수록 사람들은 괜한 외로움증(?)에 시달린다. 하나, 둘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눈물짓고 삶의 허무함을 이야기한다. 왠지 고독하다는 마음을 떨쳐버릴 수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이럴 때 우리는 음악을 듣는다. 따스한 차 한잔에 조용히 흐르는 클래식 선율, 더 할 수 없는 명약이 된다.



"요즘처럼 스산하고 계절의 쓸쓸함이 배어 있을 때에는 오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는 것도 좋겠지만 현장음악의 생동감으로 계절병을 치료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더군다나 훌륭한 협연자, 세계적인 지휘자들이 연주하는 음악회의 감동을 맛본다면 이 가을은 정말 넉넉하고 풍요로워질 것입니다."


TV프로그램이나 신문지상에 나타나는 고위층 정치인들의 표정을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 있다. 그토록 높은 지위와 명예를 가졌는데도 그들의 얼굴은 편안하거나 넉넉함이 없다. 금방이라도 전투태세에 돌입할 듯한 표정이다. 웃고 있을 때조차 너그러운 구석을 찾아보기 힘든다. 물론 그만큼 쉽지 않은 과업에서 오는 중압감 때문이겠지만... (필자의 주관적인 생각일지도 모른다.) 그런 선입견을 갖고 만난 김인호 회장을 보면서 잠시 생각을 추스른다.


"왜요? 화면에서 본 고위층들의 표정하고 다른 점이라도 있나요?(하하하) 아마 음악 때문일 겝니다. 좋은 음악은 감정을 부드럽게 만들어 건전한 판단력을 갖게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너그러운 마음으로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되지요."


김회장이 갖고 있는 음악철학 때문일까? 그의 표정은 연륜이나 지난 경력에 비해 무척 해맑다. 아니 편안한 세월만 보낸 듯 깔끔하다. 부인 이진자 여사 역시 넉넉한 마음을 가진 전업주부다.


" 저 양반 때문에 음악을 듣게 되었죠. 저희들 학생시절에는 음악회장이 요즘처럼 많지 않았어요. 그렇다고 쉽게 갈 수도 없었구요. 명동에 있는 시공관 정도가 있었지요. 그래도 어떡하든지 음악회에 가려고 노력했어요. 또 주로 걸으면서 데이트를 했는데 저 양반은 잠시도 쉬지 않고 지휘를 했지요. 입으로는 음악을 흥얼대면서 말예요. 사람들이 쳐다보건 말건 항상 지휘하는 시늉을 해서 제가 얼마나 당황스러웠는지 몰라요.(웃음)"


간호학을 전공한 이진자 여사와 서울법대를 졸업한 김회장은 68년에 연애결혼 했다. 더욱이 아주 앞서 가는 커플이었던지 지금 2000년도에 유행하고 있는 연상의 아내를 얻은 것이다. 24살 나이에 행정고시에 합격하고 경제기획원 사무관을 거쳐 경제기획원 차관보, 환경처 차관, 철도청장,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에 이어 청와대경제수석비서관, 국가경영전략연구원 원장뿐만 아니라 끝없는 학구열로 뉴욕의 시라큐스대학에서 경제학 석사를 취득하는 등 경제분야의 전문가이며 또한 외교관으로 시카고 총영사관의 경제담당 영사로 지내면서도 그의 마음 한구석에서는 항상 음악이 자리잡고 있었다.


" 제가 얼마나 음악을 좋아하는지 궁금하다구요. 단적으로 말하면 구치소에 있을 때 매일 악보를 읽으며 지휘를 했어요. 만일 그 흔한 워크맨만이라도 소지할 수 있었더라면 저는 음악을 들으면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마음으로 시간을 보냈을 겁니다. 또 유학시절에는 대학 도서관에 공부하러 가서 헤드폰을 끼고 음악만 듣다 온 적도 많았구요"


김회장의 음악사랑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 같지는 않다. 부친 김영환목사는 안익태선생과는 숭실전문학교 동문으로 당시 첼로를 전공하던 안익태선생과 함께 바이올린을 연주하여 이중주연주회를 개최할 정도로 음악에 깊은 조예를 가진 사람이었다. 이렇게 종교적이고 음악적인 집안분위기는 김인호 회장의 어린 시절을 자연스럽게 음악에 깊은 관심과 사랑을 갖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준 것이다.


" 소질만 있었더라면 음악을 전공했을 거예요. 악기를 전공하는 것도 좋겠지만 사실 지휘자가 되고 싶었거든요. 저는 귀가 밝아요. 왠만한 음악은 거의 다 외우지요. 아직도 기회가 있으면 오케스트라를 지휘해보고 싶습니다. 제가 만일 돈이 많다면 오케스트라를 사서라도 지휘를 해보고 싶을 정도니까요. 가능만 하다면 베르디의 레퀘엠이나 헨델의 메시아를 지휘해 보고 싶습니다. 저는 종교음악을 특히 좋아하는 편이지요. "


요즘도 김회장은 LP음반을 즐겨듣는다. 70년대 말, 시카고 총영사관의 경제담당 영사시절, 1200불 정도되는 월급으로 생활하면서도 틈만 나면 세일을 하는 음반가게에서 당시 국내에서는 구하기 힘들었던 클래식 음반들을 사 모았다고 한다. 현재 육, 칠백장 정도를 소장하고 있는데 그의 개인 재산목록 1호가 아닐까 한다.


"사실 LP판을 듣는 것이 귀찮을 때도 있어요. 잘 닦아야 하고 보관도 힘들고 하지만 LP판을 들으면 뭔지 모를 따스함이 느껴져요. 치직거리는 잡음도 있고 요즘처럼 발달된 기계로 만들어낸 깨끗한 음향은 아니지만 끈끈한 향수가 배어 있어서 좋아요."


한 때 국가를 경영하는 최첨단에 서있던 한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그의 음악사랑은 남다르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렇다면 음악은 그의 경력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궁금해진다.


" 고위급 정책을 담당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물론 그 분야별 전문성이겠지만요. 그러나 그보다도 더욱 중요한 것은 합리적이고 건전한 사고, 또 편견이 없는 균형된 판단력입니다. 여기에 타인에 대한 이해가 함께 한다면 사회적인 안정은 보장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음악 자체가 이런 정책판단에 직접적인 도움이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음악을 통한 정서안정과 부드러운 시각이 만들어진다면 상대방에 대한 적대적 감정이나 독선에서 오는 생각의 불균형이 완화되지는 않을까요? 그렇게 문화적 교감을 갖게 된다면 이 사회는 정말 밝고 건전하게 흘러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김회장의 경영적인 마인드는 KBS교향악단 관객개발에도 깊은 관심을 보였다.


"저는 외국 출장을 가면 꼭 그 도시의 가장 유명한 오케스트라의 정기연주회를 찾습니다. 어느 오케스트라나 정기연주회는 그 오케스트라의 꽃이니까요. 최고의 협연자와 지휘자의 훌륭한 음악을 감상할 수 있지요. 그런데 독일의 베를린필의 정기연주회를 보는데는 무려 4년이 걸렸습니다. 바쁜 일정에서 미리 예매할 시간이 없기에 무작정 음악회장을 찾아가 보면 항상 매진이었어요. 물론 그들의 좋은 연주력이 주가 되기도 하겠지만 관객개발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이었겠지요."


김회장은 KBS교향악단 정기연주회가 항상 매진이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더없이 훌륭한 연주자에 정상급의 지휘자들이 초청되는 그 좋은 연주회가 왜 매진이 아닌지 안타깝다는 것이다. 김회장 부부는 국내에 초청되는 외국의 유명 오케스트라 연주회의 경우, 비싼 입장료를 들여가며 직접 표를 사 본 적은 거의 없다고 한다. 물론 초청을 받았을 때는 호재로(?) 생각하고 기꺼이 가기도 하지만... 왜냐면 항상 그런 음악회에 갈 때마다 실망을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평상시 음악회장이 별로 익숙하지 않으신 분(?)들이 어떤 과시욕에서 멋지게 차려입고 S석에 앉아 악장마다 박수치고 떠드는 모습에서, 또 매니지먼트 차원이겠지만 오케스트라에 걸맞지 않는 협연자들 때문에 음반으로 들었던 오케스트라의 진정한 모습을 감상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라고 한다. 조용히 김회장의 의견에 동감하고 있던 이진자 여사가 말을 잇는다.


"KBS교향악단 정기연주회의 입장료가 4000원인가 5000원인가 하던 때가 있었어요. 그런데 우리 앞에 줄을 섰던 사람이 KBS교향악단도 입장료가 있냐는 항의를 하는 것이었어요. 그랬더니 저 양반이 그 사람한테 막 화를 내는 거예요. 그처럼 싼 입장료에 훌륭한 연주를 볼 수 있는 음악회가 대한민국에 또 어디 있느냐고 말이죠. 요즘도 마찬가지예요.(웃음)"


김회장 부부의 KBS교향악단에 대한 사랑은 일방적이다. 한국에도 이렇게 좋은 소리를 낼 수 있는 교향악단이 있다는 것이 김회장 부부는 무척 자랑스럽고 든든하다고 한다. 해외 연주단체를 많이 접해 본 경험으로 KBS교향악단도 이제는 충분히 국제적인 수준이라고 김회장 부부는 말한다.


"저는 정말 중요한 일이 아닌 경우에는 아무리 바빠도, 아니 해외 출장에서 돌아온 그날도 만일 KBS교향악단의 정기연주회 날이면 꼭 참석하려고 합니다. 음악을 들으면서 피로를 풀 수 있으니까요. 이렇게 좋은 음악, 또 좋은 기회를 보다 많은 사람들과 공유했으면 좋겠어요. 무엇보다도 KBS교향악단의 정기회원들은 대부분 정말 음악이 좋아서 오는 분들 아닙니까?"


항상 스케줄에 쫓기는 김회장 이지만 그는 KBS교향악단의 정기회원이라는 신분으로 기꺼이 인터뷰에 응했다. 그리고 그들 부부는 다음 스케쥴을 위해 떠났다. 예술의 전당 음악회에 간다고 한다. 가을과 음악을 위해... 저녁도 거른 채....

(글 : 김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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