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일미래 3호 권두언>
일본경제의 재 점화는 가능할까?
------------------------------------------------------------------------------------------------------------ 일본은 한국전쟁을 계기로 2차 세계대전 패전으로 완전히 붕괴된 경제의 재건에 성공했다. 그 결과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그 위상을 높이고 미국에 도전하는 위치까지 올랐다. 1985년 ‘플라자 합의’사태를 시작으로 일본의 황금기는 저물기 시작했고 1991년 버블경제가 터지면서 극심한 초창기 불황을 겪게 된다. 그 여파는 3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이것이 일본이 경험하고 있는 소위 ‘잃어버린 30년’이다. 문제는 일본경제가 언제 다시 활기찬 경제로 돌아올지 전연 앞날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 계속 머물고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잃어버릴 40년’까지 거론될 정도다.
이 글에서는 먼저 일본경제의 현주소 특히 전성기 시절과 비교한 일본 경제의 현재의 모습을 다양한 각도에서 관찰한다. 다음으로 일본경제가 이렇게 추락한 배경과 원인, 그리고 과정의 분석을 시들의 이론을 참고한다. 일본경제는 우리경제의 선행모델이기에 일본경제를 구조론적인 시각에서 관찰하는 것은 한국경제가 가야 할 길에 대한 암시도 되리라고 생각한다. 한편 이 과정에서 우리 한국경제와 일본경제의 바람직한 관계에 대한 인식의 정리, 양국의 협력의 필요성과 그 가능성, 이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 등에 대한 깊이 있는 사고의 정리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에 대한 상세한 기술은 아마도 다음호의 권두언에 싣게 될 것이다. ------------------------------------------------------------------------------------------------------------
- ‘잃어버린 30년’이 초래한 일본경제의 현주소 □ 스위스의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의 세계경쟁력 연감에 의하면 소위 ‘잃어버린 30년’이 시작되던 1989년(헤이세이 원년)부터 1992년까지 4년 연속 1위를 차지하던 일본의 국가경쟁력은 30년 만인 2020년 63개 국 중 34위로 추락했다. 싱가포르(1위), 홍콩 (5위), 타이완(11위), 중국(20위), 한국(23위)은 물론 말레이시아(27위), 타이(29위)보다 낮은 평가를 받았다.
□ 1967년 일본의 1인 당 GNP가 미국을 앞섰지만 2023년에는 년에는 미국의 41%에 불과했다.
□ 2000년 만 해도 한국의 약 3배에 달했던 일본의 1인당 국민소득은 2023년 한국에 역전 당했다. GNI로 한국은 36,196$, 일본은 33,906$이었다. 일본경제는 2000년부터 20년 간 1,02배 늘어난 것에 비해 한국은 2.56배 성장했다.
□ 세계경제를 주도하는 일본의 제조업은 악몽을 겪고 있다. ‘잃어버린 30년’이 시작하기 직전인 1989년 전 세계 시가총액 상위 20개 기업 중 일본기업이 14개나 차지하고 있었는데 2020년에 일본기업은 그 리스트에서 자취를 감췄다. 겨우 도요타자동차의 36위가 최고였다.
□ 무엇보다도 세계 최강의 제조업국가임을 자랑하던 일본, 초창기 반도체 산업의 최강을 자랑하던 일본의 IT산업의 현 주소는 참담하다. 일본은 미국에서 반도체가 개발된 직후 제조기술을 이전 받아 이를 활용한 개인용 전기 전자제품을 생산하면서 80년대 중반에 세계반도체 생산을 석권하여 세계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 미국정부는 일본과의 불공정거래를 해소하기 위해 슈퍼 301조를 발동하고 ‘미·일 반도체 협정’을 체결하여 일본의 반도체산업 발전에 제동을 걸었다. 이후 일본의 반도체 산업은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하여 현재는 세계시장 점유율 10% 미만으로 추락한 상황이다. 그 후 일본정부는 반도체 산업의 부흥을 위한 다양한 대책을 내놓았지만 번번이 실패를 거듭하여 오늘에 이르러 반도체, IT 후진국이 돼 있다. 최근 일본 반도체산업의 부흥을 꾀하는 상당한 노력이 일본 정부와 의회에서 이뤄지고 있지만 이러한 노력의 성공 가능성을 비관적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 일본 경제문제의 본질은 무엇일까? □ 경기적 현상인가? 문제의 본질에 제대로 된 접근을 하지 않으면 문제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없다. 일본이 90년대 초반부터 80년 대 이전에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던 심각한 불황이 수년째 계속될 때에도 일본 정부의 경제정책 담당자들은 물론 대부분의 민간 경제전문가들조차 이 현상을 유효수요의 부족에서 비롯되는 통상적 경기순환 현상 이상의 구조적 문제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다. 그들이 하나 같이 믿었던 경기순환 과정의 바닥은 그 끝을 모르고 내려앉았다. 그래서 일본정부는 잃어버린 10년 기간에만도 무려 9번, 총 123조 엔이라고 하는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입하면서 경기진작책을 썼다. 그러나 백약이 무효였다. 결국 일본은 소위 '잃어버린 10년'속에서 90년대 전부를 보내는 것을 시작으로 급기야 '잃어버린 30년'까지 이미 겪었고 ‘잃어버릴 40년’을 우려해야 될 형편에 처하게 되기에 이르렀다. 사실상 일본경제는 30년 이상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것이다. □ 구조적 문제가 초래한 결과인가? 일본 사회나 정부가 이런 현상을 경기순환 과정을 넘는 일본 경제의 구조적 문제의 노출, 그리고 이의 수습과정에서 초래되는 결과적 현상일 뿐이라는 것을 어느 정도 인정하기 시작한 건 90년대 후반에 가서 이런 추세가 되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진행되고 난 뒤의 일이다. 일본의 장기불황은 금융, 부동산, 시설, 고용 등에 낀 거대한 거품이 붕괴되는 형태로 시작됐지만 그 배후에 있었던 보다 본질적이고 구조적인 일본경제의 문제는 바로 일본의 성공을 가져다 준 일본 특유의 경제·사회구조 그 자체였다고 본다. 흔히 '55년 체제'라고 불리는 것이다. □정(政)·재(財)·관(官)의 공고한 철의 3각 구조, 흔히 일본주식회사로 불리는 정부 지도하의 선단식 기업경영 체제, 기업 내 종신고용제 등 독특한 노사관계 등이 핵심 요소를 이루는 체제다. 시장기능의 위축, 정부 역할과 시장기능이 적절히 구분되지 않는 이런 식의 일본경제구조는 필연적으로 공급자 중심의 경제구조가 되어 정부의 고성장 정책과 기업의 과도한 팽창적 경영 행태를 유발했고 각 분야에 거대한 거품이 끼게 된 것이다.80년대 중반까지 일본 경제의 성공을 가져왔던 이 시스템이 그 이후 근본적으로 달라지는 세계 경제의 새로운 패러다임 하에서 더 이상 유효한 시스템으로 작동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이에 대한 국가·사회적 인식이 충분하지 못했다. 여기에 일본 사회구조의 경직성과 국가 지도력의 부재가 가세해 일본은 문제해결 능력을 보이지 못해 왔다. 결국 '잃어버린 30년'을 경험했고 ‘잃어버릴 40년’을 우려해야 될 형편에 처하게 되었다.
□ 이러한 주장의 대표적인 사람은 고인이 된 일본 최대의 논객 사카이야 다이치(堺屋太一)다. 그는「만족화사회의 방정식」, 「조직의 성쇠」등 저서를 통해 ‘일본 경제·사회는 한국전쟁의 특수를 누리면서 경제적으로 부흥의 기틀이 확립되고, 정치적으로는 자민당 일당 지배체제가 완성되는 1955년, 세계 제2의 경제를 이루는 기반이 된 정치, 경제시스템을 완성했다. 그 시스템이 한 동안 너무 성공적이었기에 이 성공의 기억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그래서 일본은 1990년대에 들어와서 시작되는 세계경제의 혁명적 변화 추세를 선도적으로 제시해 나가지 못하는 건 물론 최소한의 수용도, 적응에도 실패하면서 일본 경제·사회가 정체돼 버렸다’라는 주장을 했다. 소위 ‘55년 체제론’과‘성공신화에의 매몰론’이다. 55년 체제에 갇혀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능력을 상실한 일본경제·사회는 소비자 선택의 제약, 경쟁의 부정, 국제화의 실패로 90년 대 이후에 전개되는 세계경제의 변화의 추세를 따라가지 못하고 끝없는 낙후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고 보고 있다. 그는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단순한 구조개혁이 아닌 일본 경제·사회의 근본적 체질개선을 주장한 점이 특히 주목할 만하다.
□ 그 이후 이와 궤를 같이하는 일본 내 주장의 대표적인 것은 1995년 일본의 저명한 경제학자 노구치 유키오(野口悠紀雄) 교수가 주장한 “1940년 체제론”이다. 그의 이론의 주된 가설은 “현재 일본경제를 구성하는 주요 요소는 전시기에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즉 일본 경제는 전시 총력전 체제의 연속으로, 전시에 도입된 제도와 틀이 패전 이후에도 뿌리 깊게 남아있다는 주장이다. 전쟁 수행이라는 목표가 패전 이후 경제 복구로 바뀌었을 뿐 경제자원을 총동원해야 하는 상황은 마찬가지여서 전시제도가 그대로 남아있다는 관점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1940년 체제’가 고도성장 시기에는 유효했지만 1990년대 이후에는 일본경제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때가 많다는 것이다. 한 방향을 정해놓고 성장할 때에는 잘 작동하지만 불확실한 변화에 대한 대응능력은 떨어지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생산자 우선주의’와 ‘경쟁의 부정’으로 특징 지워지는 이 체제는 소비자 선택과 이익을 외면하고 경쟁력 없는 기업을 존속시키는 비능률의 극대화를 초래하고 새로운 여건이나 변화에 둔감하여 구조적으로 일본경제의 침체를 가져오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가 일본이 그 뒤 70년대와 80년대에 개혁의 기회를 놓치게 하고 90년대에 이르러 경기의 침체와 맞물리면서 일본경제의 ‘잃어버린 10년’이 시작되었지만 어언간 30년을 넘어 40년을 향해 가는 오늘로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주장이다.
- 일본경제의 침체와 구조개혁 노력 □ 일본경제의 침체과정에서 이를 구조적으로 탈피하려는 개혁노력이 없었던 건 아니다. 대표적으로 고이즈미(小泉 純一郎)의 개혁 노력이 있었다. 그러나 일본 경제․사회의 공고한 경직적 체질을 바꾸지 못했다. 결국 2012년 아베 신조(安倍 晋三)가 총리로 재 소환되어 일본경제의 구원투수로 등장했다. ‘아베노믹스’로 불리는 그 정책방향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대담한 통화정책이다. “일본은행으로 하여금 돈을 무제한으로 찍어내게 하겠다.”로 표현된다. 둘째는 기동적 재정정책이다. “빚을 내서라도 경기를 부양하겠다.”로 요약된다. 셋째는 거시적 구조개혁이다. “경기부양뿐 아니라 규제개혁 및 일본경제의 체질개선을 통해 근본으로 성정동력을 재정립 하겠다.”로 정리된다. 아베노믹스의 효과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지만 그의 정책이 ‘일시적 경기부양, 수출증진 효과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초래된 엔화의 저 평가로 일본국민의 소득은 축소되고 생활이 궁핍해졌다. 즉 일본국민의 실질소득의 증대에는 전연 도움이 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역효과를 가져왔다. 또 저 평가된 환율로 엔화 표시 수출액의 명목적 증가에 그치고 국민의 실질소득은 저하되면서 오히려 기업의 구조개선 노력을 저해하여 산업과 기업의 경쟁력 향상에 역행하는 부작용을 낳았다’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노구치 유키오(野口悠紀雄) 교수는 그의 최근 작 「일본이 선진국에서 탈락하는 날」에서 ‘마약 같은 엔저효과에 의존한 탓에 가난해진 일본’이라고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 무릇 어느 나라의 경우에도 개혁은 어려운 일이다. ‘개혁은 창업보다 어렵다(왕안석: 중국 송나라 때 개혁주창자),‘개혁은 지옥 같은 싸움(토니 블레어 총리)’같은 말이 그 어려움을 대변하고 있다. 개혁은 사람의 생각을 바꾸는 것이 전제된다. 사람의 생각을 바꾸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달리는 자동차에서 타이어를 바꿔다는 것에 비유된다. 그래서 역사를 보더라도 성공한 개혁보다 실패한 개혁이 훨씬 많다.
□ 일본은 다시 탄생하기에는 너무 비대하고, 개혁하기에는 과거 너무 성공적이었다. 일본경제의 문제가 우리 한국경제에 주는 시사점은 무엇인가? 한 때 눈부신 성장을 했던 일본경제가 어떻게 쇠퇴하는가? 그 성공을 모방하고 뒤따랐던 한국경제는 그 실패의 전철을 어떻게 피할 것인가? 일본은 우리나라의 선행 모델이자 반면교사로서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 일본경제가 다시 점화하는 것은 일본에게 뿐만 아니라 우리 한국에도 좋다. 한·일 양국 공히 한계에 부닥친 경제발전의 모멘텀을 다시 찾아야 하는 공통의 과제를 갖고 있다. 양국의 경제협력이 새로운 차원에서 논의돼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여기서 그 모멘텀을 찾을 수는 없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