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우회지 24년 겨울호 원고>
한국경제, 이 정도 수준에서 끝낼 것인가?
시장경제연구원 이사장 김인호
- 한국경제, 과연 선진국 문턱을 넘어 섰나? 한국경제는 지난 60년 간 빠르게 성장하여 선진국 문턱에 진입하였다. 2023년 기준 명목 GDP가 1조 8,394억 달러, 1인당 GNI가 36,194 달러에 이르고, 2014년 세계 7번째로 30-50클럽에 포함된 사실(식민지를 경험한 나라로는 유일)이 한국경제의 60년의 성취를 집약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경제를 경쟁력의 관점에서 구조적으로 깊이 관찰하면 기존 성장모델의 작동이 한계에 부딪히고, 새로운 성장 동력의 발굴·확보에는 큰 진전이 없어 성장의 기반이 되는 경쟁력에 근본적 문제가 생기고 있고, 경제전반의 활력이 떨어지고 국민이 느끼는 미래에 대한 불안은 점증하는 등 경제에 대한 전반적인 국민의식은 대체로 침체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특히 성장잠재력의 하강추세가 두드러진다. 서울대학 경제학부의 김세직 교수는 한국의 성장률 추이에 대해 「매 5년 1% 하강의 법칙」을 제기한 바 있다. 10년 중앙이동평균 방식에 의해 그는 김영삼 정부 6.5%, 김대중 정부 5.0%, 노무현 정부 4.0%, 이명박 정부 3.2%, 박근혜 정부 2.6%의 성장 수준으로 경제를 마감하여 다음 정부에 넘겼다고 분석하고 있다. 이 추세대로라면 문재인 정부는 1-2% 내외에서 경제를 마감하고 윤석열 정부에 한국경제를 이양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만약 현 윤석열 정부가 한국경제를 다시 발전 궤도에 올려놓지 못한다면 거의 0-1% 수준의 정체된 경제실적으로 마감할 가능성도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심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성장률 저하 추세의 배경에는 국가경쟁력의 지속적인 하락 추세가 있다. OECD, WEF 등 국제 전문기관들이나 한국경제연구원, 한국금융연구원 등 국내 유수 연구기관들도 그들의 국가경쟁력 지표를 통해 일찍부터 한국경제의 이런 현상을 심각하게 지적해 오고 있다.
더욱이 문재인 정부 5년간의 반시장적, 반기업적 정책과 제도가 한국경제의 경쟁력구조에 초래한 악 영향은 계량하기 어렵다. 윤석열 정부는 심각한 하향 추세를 그리는 한국의 경쟁력 추세를 어떻게 반전시킬 것인가 하는 가장 본질적인 경제문제를 안은 채 출발한 것이다.
이런 상황을 종합하여 필자는 ‘한국경제는 선진국의 문턱에 한 발을 걸쳤지만 두 발이 다 넘어가 선진국 대열에 완전히 합류할지 아니면 이에서 뒷걸음쳐 결국 소위 중진국함정(Middle Income Trap)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지 기로에 선 형국’이라고 본다.
- 극명하게 명(明)과 암(暗)으로 갈리는 한국경제의 구조적 특성 한국경제는 구조적 문제의 심각성이라는 어두운 면과 추가발전 잠재력이라는 밝은 면이 극명하게 갈리면서 양 면이 공존하고 있는 구조적 특성을 갖고 있어 경쟁력의 향상 또는 추락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먼저 한국경제의 경쟁력 향상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어두운 면을 본다. 첫째, 양과 질의 양면에서 고용에 심각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한국경제는 100만 명 이상의 실업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계속 60%대에 머물고 있는 고용율과 이에 크게 못 미치는 청년 고용율은 한국경제 사회문제의 최대 이슈가 되고 있다. 이에 더해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OECD 평균의 77%에 그치고 독일의 63%, 미국의 57%에 불과한 수준이다. 한국경제가 고용의 질과 양, 양면에서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이야기다.
둘째, 부문 간(제조업/서비스업, 대기업/중소기업, 농업/비농업 등) 생산성 격차가 심각하다. 서비스업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제조업 대비 50% 수준에 머물고 있고 제조업 내 중소기업의 노동생산성은 대기업의 29% 수준으로 시간이 갈수록 그 격차가 확대되는 추세에 있다.
셋째, 한국경제에는 영세자영업자, 소상공인 그리고 이 부문에 종사하는 무급 가족종사자가 이루고 있는 거대한 저생산성 부문이 있다. 이 부문에는 전체 취업자의 약 24%에 달하는 660만 명이 종사하고 있는데 국제적으로 비교할 때 엄청나게 그 비중이 높으며(미국의 4배, 일본의 2.5배, OECD평균의 1.5배) 이들이 제기하는 문제가 바로 한국경제의 주요 문제인 성장, 고용, 분배, 복지 등에 있어서 ‘만병의 근원’으로 작용하고 있다. 코로나19 펜데믹의 직격탄을 맞은 사람들도 바로 이들이며 이들에 대한 지원문제가 윤석열 정부가 성립되자마자 그 정부의 최우선 정책대상으로 인수위 단계에서부터 제기된 바 있었고 최근에도 “활력 있는 민생경제” 란 이름으로 각종 지원정책을 내용으로 정부의 24년의 역점 경제정책 방향으로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경쟁력의 절대적 취약이 그 근본 배경이고 원인인데 지원과 보호를 통해 문제 해결에 다가갈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필자는 지극히 회의적이다.
넷째, 저 출산과 고령화로 인한 인구구조의 악화다. 최근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68명을 기록할 전망으로 세계 평균의 1/3 수준이고 세계 최하위이다. 따라서 고령화 속도는 세계 최고 수준을 보이는 등 인구구조가 악화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경제성장을 둔화시키고 복지에 대한 수요를 증가시켜 재정수지 악화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경쟁력의 추가적 향상을 유인할 수 있는 밝은 면도 많다. 첫째, 사교육비 부담과 대학교육의 실효성에 대한 문제가 지적되나 높은 교육열의와 성취동기를 가진 풍부한 인적자원은 성장 잠재력의 기반이 되고 있다.
둘째, 주력 산업의 사양화에 대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첨단 제조업이나 ICT 산업은 여전히 추가 발전 가능성이 높으며 우리 경제에 충분히 형성된 산업기반은 어떤 산업적 수요도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융·복합적 발전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셋째, 서비스업 등 저 생산성 부문 중 상당 부문은 성장 산업으로 변모될 잠재력이 있다. 대표적으로 의료, 교육, 관광, 법률서비스, 문화콘텐츠 등은 하기에 따라서는 획기적으로 수출화가 가능한 산업들이다. 이미 문화콘텐츠는 그 길에 들어서 있다.
넷째, 어두운 면에서 기술한 자영업, 소상공업 등 저생산성 부문에 체화돼 있는 거대한 잠재실업군은 다른 면에서 보면 경쟁력 있는 산업과 기업에서 이들에 대한 유인 기능만 작동한다면 이들 산업에 대한 인력 공급원이 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한국의 생산인구 부족 문제는 상당기간(최소한 10년 이상) 극복 가능할 것이다.
다섯째, 세계경제 지형의 변화는 우리의 잠재력을 실현하는데 유리한 환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와 FTA가 발효된 국가(59개국)의 총 GDP는 전 세계의 84.6%로서 이미 그만큼 경제영토가 확장된 상태다. 더하여 수도권 중심으로 반경 2,000km 이내의 국가 인구는 16억 명이며, 100만 명 이상 도시는 5개국 162개에 달하고 있어 동북아에서 가장 유리한 지리적 여건을 우리 수도권은 가지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한국경제의 장래에 대해서는 비관도 낙관도 금물이다. 앞으로 경제를 운영해 나감에 있어서 어떻게 제약요인이 될 구조적 어두운 면을 최소화 하고 추가적 발전요인이 될 밝은 면을 어떻게 최대화 해 나갈 것인가가 한국경제의 장래를 결정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경제적 측면에서의 구조적 특성에 더해 지금의 우리나라는 ‘정치적, 사회적 갈등의 심화’라는 또 다른 측면의 심각한 구조적 문제점을 안고 있다. 만약 이 구조적 문제와 경제적 측면에서의 어두운 면이 결합되나 그 해결의 방향을 찾고 이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이루는 데 실패한다면 한국경제는 진정 심각한 위기적 상황으로 빠져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정도 수준에서 머물고 말 것인가? 윤석열 정부와 이후 정부는 ‘경쟁력의 향상과 구조적 문제의 극복’이라는 한국경제의 핵심적 과제에 정면 도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경제는 이 정도 수준에 머물고 선진국 수준으로 완전히 정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필자는 그간 발간된 필자의 책 들, 각 종 강연과 기고 등을 통해 대내적으로는 ‘기업가형 국가’의 성립을 critical path로 하는 일련의 대안을 제시해오고 있다. 필자는 대외적으로는 ‘일본과 단일 경제권’을 지향하는 상호 협력과 교류의 획기적 증진이 또 다른 critical path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에 대한 좀 더 상세한 필자의 생각은 기회가 있으면 앞으로 밝히고자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