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김인호문집 > 저서  



[ 요약]

1. 서론

성장의 정체와 양극화라는 경제의 불안요인 하에서 우리 사회는 지난 수년간 경제운용에 있어서 이념적 갈등을 보여왔다. 최근에 본 한미 FTA 체결과정에서 표출된 극명한 대립에서 보여준 해소하기 힘든 상반된 논리와 현실인식은 상호이해와 합의보다는 정형화된 좌우이념 논쟁으로 귀착되는 듯하다. 정치 민주화와 함께 의견의 차이가 표출되고 있으나 토론과 합의를 통하여 해결되지 못하고 모든 사회현상이 이쪽 아니면 저쪽이라는 이분법으로 치닫는 경향이 있다. 경제현안에 대한 토론과 합의를 위해서는 사회현상의 복잡하고 다양한 측면에 대한 고려와 이해가 필요한데, 이념화된 의견이 충돌하며 사실보다는 신념에 기반한 대립이 자주 눈에 띈다.
경제운용과 관련하여 최근의 큰 정부론을 둘러싼 논쟁에서도 정부의 바람직한 역할에 대한 건설적 논의보다는 시장 대 정부라는 이념적 정치적 대립이 우선되고 있다. 큰 정부인가 작은 정부인가, 정부인가 시장인가, 성장인가 분배인가 등 이분법적인 논쟁은 정치적 대립으로 나타날 뿐 경제?사회를 발전시키는데 도움이 되기 힘들다. 이러한 이분법적 대립은 이념화하여 사회문제를 단순하게 보이도록 오도한다. 모든 사회문제는 양면을 가지고 있으며 완벽한 해결은 있을 수 없다. 소득재분배와 사회복지의 정도, 정부의 규모 등 경제적 논점에 대한 통시적인 정답은 없다. 중요한 것은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며, 이것은 사회전체 구성원의 이해와 합의를 통하여 선택하는 과정이다. 이것은 사회적 학습의 과정이다.
선진국의 경험에서 보면 정부 역할의 범위와 규모도 시대상황에 따라 변화해왔다. 선진국의 시행착오를 학습하고 이를 통하여 선진국의 경험을 뛰어넘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의 역할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요구되며, 사회가 작동하는 원리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그 무엇보다도 시장원리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시장원리는 시장 만능주의의 원리가 아니며 정부축소를 주장하는 원리가 아니다. 시장원리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잘 살 수 있게 한 원리이며, 이것은 큰 정부 하에서든 작은 정부 하에서든 사회가 잘 작동하기 위하여 필요한 원리이다.

2. 시장원리란 무엇인가?

최근 수년간 시장원리는 언론을 통하여 여러 사안에 대한 논쟁에서 자주 등장한 용어 중의 하나이다. 기업, 노사, 교육, 부동산, 산업, 복지 등 모든 정책적 논란 속에서 시장원리가 편가르기의 지표가 되어 왔다. 하지만 시장원리는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이 변화하고 가격신호에 따라 자원이 배분되어 가는 가치중립적 사회운용 방법이지 시장원리 자체가 이념적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시장원리를 약육강식인 정글의 법칙이라든지 부자와 강자를 보호하는 기득권 유지의 원리라고 보는 것은 시장원리에 대한 오해이며, 사회를 강자와 약자, 빈자와 부자, 능력 있는 자와 없는 자로 나누는 단순한 이분법적 사고의 소산이다. 또한 시장기구가 작동한 결과로 발생하는 가격, 각 경제주체의 경제적 성과, 이로 인한 소득분배를 공정이나 정의의 잣대에서 평가하는 것은 경제행위에 대한 역사가 오래된 거부감에 기초하고 있다. 시장원리는 무수한 시장참여자의 개인적인 행위에 의하여 자원이 분배되어가는 원리이며, 이러한 시장기구의 작동결과를 가치적 범주에서 재단할 수는 없다. 시장원리의 무차별적이고 비인위적인 특성으로 인한 결과, 예를 들면 시장의 낙오자와 취약계층의 참담한 현실을 가지고 시장원리가 부도덕하다고 매도할 수는 없다. 이들에 대한 사회적 손길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으로 시장원리 자체를 부인할 수는 없다.
시장원리는 보상과 징벌의 과정에서 무차별적이고 비인위적이다. 시장원리는 각 개인이 자기 것에 대한 명확한 인식 아래 자신의 선택을 스스로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게 하고 이것이 경제발전으로 이어진다. 특히 개인적인 이해관계, 즉 경제적 유인은 인간본성에 기초한 동기로서 신중한 선택의 강력한 유인이 된다. 이러한 인간본성에 기초한 경제운용이 경제적 성과로 나타날 것이라는 것은 오래전부터 동양에서도 감지되고 있었으나 이것이 사회운용의 질서로서 확립된 것은 근세 서구에서 비롯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은 사회운용 방식으로서의 시장질서는 이것이 작동할 수 있는 정치사회적 환경이 조성되었을 때만 실현될 수 있는 문명화된 질서라는 것을 시사한다.
시장원리의 작동결과에 대한 불만을 해소하기 위하여 정부의 인위적인 계획으로서 시장을 대체하려는 시도도 있었으나 모두 실패했다. 이것은 근대산업사회에서의 지식활용과 정보전달기구로서 작용하는 시장의 중요한 역할을 간과한 결과이다. 분업과 시장의 확대와 과학기술의 발전의 급속한 진전 아래 끊임없이 발생하는 수많은 정보와 지식은 정부를 위시한 특정한 집단이 독점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섰다. 특정 시공 상에 위치하고 있는 개개인의 지식과 정보가 총화될 수 있을 때 효과적인 지식의 활용과 자원배분이 가능하다. 이것이 바로 현대사회에서 시장기구가 경제운용의 지배적인 방식이 되는 이유이다.
이렇게 시장원리는 경쟁을 통한 보상과 징벌의 원리, 예산제약의 원리, 정보공유와 지식활용의 원리, 다양성과 분권화의 원리를 포함하는 효과적인 사회운용 원리의 하나로 이해되어야 한다. 시장원리의 작동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이를 받아들이는 사회의 이해와 합의 하에서 가능하다. 나아가 시장기구는 이로 인한 수혜가 사회구성원의 대부분에게 향유되도록 안정적 소득분배, 경기안정, 재정의 건전성, 물가안정 등을 통하여 정치?경제?사회적으로 안정되어 있어야 지탱될 수 있다. 따라서 시장원리의 작동을 위해서는 이를 지탱하는 법과 제도에서 비롯되는 올바른 경제운용의 틀이 매우 중요하다.

3. 시장원리와 정부의 역할

사회운용 질서로서의 시장 질서란 사적 소유권이라는 사회적 장치에 기초한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장치의 발전이 역사적으로 진화되어 온 것이라는 점에서 시장질서는 인위적으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지만, 법과 제도라는 사회적 장치는 인위적 실체를 가진다는 점에서 자연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즉, 시장원리의 작동은 우선 시장이 존재해야하고 시장질서가 있을 때 작동한다. 시장질서는 질서를 수호하는 사회적 장치에 기반하며, 많은 경우 사회적 장치에 대한 합의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정치와 정부의 역할이다. 이렇게 볼 때 시장경제가 중심이 된 경제운용에 있어서 정부 역할의 최우선 순위는 시장질서의 확립이다. 이것은 법과 제도의 운용자로서의 정부 역할이다.
역사적 경험에서 볼 때 시장질서는 바람직한 자원배분을 통하여 놀랄만한 경제적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시장이 작동하는 조건이 만족되지 않는 경우 시장은 효율적인 자원배분을 달성하지 못하는데 이것을 시장실패라고 한다. 경제이론에서는 시장실패를 치유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라고 보나, 시장실패가 바로 정부의 개입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어떤 시장실패는 정부가 치유하지 못할 수도 있고, 정부 자체의 문제로 인하여 오히려 더 나쁜 결과를 가지고 올 수도 있다. 시장실패를 치유하고 경제?사회?정치적 안정을 유지하는 정부의 역할은 이론적으로 시장실패를 보완하고 시장의 작동을 원활하게 함으로서 이상적인 상태를 달성할 수 있다. 하지만 이때 우리가 상정하는 정부는 능력 있고 선의로 가득 찬 이상적인 정부이다. 하지만 정부도 인간이 만든 조직으로 잘못 운영되면 무능력할 수도 있고 나아가 악의에 가득 찬 이해집단으로 사리사욕을 채울 수도 있다. 만약 선의와 능력이 있는 정부가 되지 못할 경우 정부의 개입은 오히려 시장실패보다 더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를 가지고 올 수 있다. 이것을 정부실패라고 한다.
이러한 정부실패의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시장질서의 확립과 시장이 잘 작동하기 위한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안정성을 유지하는데 있어서 정부의 역할은 중대하다. 이는 시장경제의 원활한 작동을 위해서는 경제운용에 대한 국민적 합의와 합의한 경제운용의 의도를 담아낼 수 있는 능력있는 정부가 필요함을 의미한다. 하지만 유인구조의 왜곡, 책임성의 결여, 예산제약의 모호성은 정부개입이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는 문제이며, 여기에 정책의 딜레마가 있다. 정부의 개입이 바람직하려면 우선 이것이 정부가 할 수 있는 적절한 개입인지 (적절성), 그리고 이 개입의 결과로 인하여 의도하는 목적을 달성하는지 (효과성), 이러한 개입으로 희생한 것에 비하여 얻을 수 있는 것이 얼마가 되는지 (효율성) 따져보아야 한다.
최근 경제환경의 변화는 전세계적으로 정부의 개입범위를 축소시키고 있다. 정부의 직접적 개입에 의한 미시적 자원배분 조정은 불필요함을 넘어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되고 있으며, 거시경제정책도 세계화된 거시경제 환경 하에서 효과성이 의문시되고 있다. 사회복지와 소득재분배도 과도하면 그 자체가 지속가능하지 않고 성장을 정체시키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따라서 정부의 역할은 한마디로 적절한 법과 제도의 구축을 통하여 시장경제의 기본적인 원칙을 살려가는 것이다. 시장원리는 정부의 부재가 아니라 적절한 법과 제도의 확립 하에서 작동하는 것이며, 이러한 작동환경을 만드는 것이 바로 정부의 역할이며 바람직한 경제운용의 출발점이다.


4. 시장원리에서 본 한국의 경제운용

경제운용이 궁극적으로 지향해야할 목표는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이다. 이것은 국부의 증대를 기초로 한다. 국부의 증대는 한두 해의 경기호황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며 장기적인 경제발전을 통한 안정적 성장 하에서 가능이다. 따라서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적극적으로 높은 성장률이라는 결과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안정적인 성장을 위한 환경의 조성에 있다. 역설적이지만 시장원리를 믿는다면 정부의 역할은 시장외적 요인이 시장의 작동에 영향을 주지 않고 경제운용에서 시장원리가 잘 작동하도록 법과 제도의 진화를 돕는 것이다. 즉, 좋은 정부란 경제활동을 망치지 않는 정부이다. 장기적인 경제성과는 정치, 문화, 역사, 인구, 기술 등 주어진 환경의 변화에 대응하여 시장경제의 틀을 어떻게 유지하고 이에 따라 경제주체가 경제활동의 양과 질을 어떻게 고양시키는가에 의하여 정해진다.
한국경제의 빠른 성장에 있어서 정책이 기여한 부분이 분명히 있을 것이며, 이것은 과거 개발연대의 정책적 개입에 대한 국민적 향수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나 한국경제가 성공한 이유는 정부의 개입 자체보다는 다른 실패한 국가에 비하여 정부의 개입이 경쟁을 통한 보상과 징벌이라는 시장원리의 기본 원칙을 위배하지 않았다는 데서 찾아야 한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에서 본다면, 바람직한 정책의 요건은 정책 자체보다는 정책이 수립되고 집행되는 과정에 있다. 정책의 외형과 작동방식은 차이가 나지만 바람직한 정책은 시장경제의 근본원리를 위배하지 않는 정책의 시장성을 갖추어야 한다.
그렇다면 한국의 경제운용은 어떠한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기준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우리 경제 시스템이 정부의 인위적인 의지를 최대한 배제한 채 경제주체들의 자율을 기반으로 물 흐르듯 유연하게 흘러가고 있는지, ‘경쟁 원리’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보상과 징벌’의 원칙과 ‘수요자 선택 원리’가 어느 정도나 지켜지고 있는지, 시장원리의 기초가 되는 ‘수요공급의 원칙’이 구체적인 경제현안 문제를 이해하고 이에 대한 해답을 찾는 데 제대로 원용되고 있는지, 이런 문제를 중심으로 시장에 대해 정부의 역할을 적정하게 하려는 노력 있는지 등이다.
이러한 기준들을 놓고 우리 경제ㆍ사회의 중요한 다음 몇 가지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보면 경제운용이 가야 할 방향에 대한 해답은 저절로 나올 것이다. 우선 경제의 총체적 성과는 수시로 변하는 국ㆍ내외 시장여건 하에서 시장 참여자들의 행동에 대하여 시장이 반응한 결과인데 정부가 총량 성장 목표를 정부의 정책목표로 제시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가능한지? 부동산문제를 세제와 규제로 해결하는 것이 시장의 기능을 위축하고 문제를 더욱 난제로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 경제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불공정거래와 비경쟁적 요소는 단순히 기업의 문제인지? 아니면 기업이나 산업의 형성 및 성장 과정에서 정부의 경제운용 방식과 관계가 없는지? 주요 노사 현안을 해결하는데 있어서 시장원리에서 보아 기본적으로 지켜져야 할 원칙은 없는지? 그리고 개별 기업의 경쟁력이나 협상력과 관계없이 전 기업에 업종별로 강제적 일률적으로 실시하는 집단주의적 접근방법이 과연 시장원리와 양립할 수 있는지? 여성인력에 대해 생산성과 무관하게 행해지는 한국 특유의 각종 보호제도가 이미 직장을 가진 여성에게는 큰 보호가 되겠지만 새로이 취업을 하고자 하는 여성에게는 오히려 그 기회를 뺏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지 않는지? 정부가 운영하는 국민건강 보험제도에 의해 전 국민의 건강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능한지? 개인이 스스로 책임지고 시장기능에 의해 해결할 수 있는 사람과 해결돼야 할 영역까지 정부가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 적절한지? 30년간 일관되게 유지 강화돼 온 평준화 교육정책 기조에도 불구하고 초래된 비평준화의 극치인 오늘의 교육현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학교의 선택과 입시과정에서 경쟁원리와 수요자 선택원리를 부활하지 않고도 얽히고설킨 교육 현안들을 해결하는 것이 가능한지?

5. 결론

민주국가에서는 정부가 하는 역할에 대하여 국민이 수긍하지 않으면 정부는 그 역할을 할 수 없다. 시장원리가 살아 숨쉬는 경제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법과 제도의 구축과 이를 지지하는 경제운용은 결국 이에 대한 정치적 지지를 필요로 하며, 이는 국민의 시장경제에 대한 성숙된 이해와 이를 돕는 정치지도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이 시대의 정치지도자들에게 요구되는 정치적 리더십은 무수한 가정과 전제가 필요한 2-30년 후의 장밋빛 나라 모습을 그리는 일 같은 것이 아니다. 진정 그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바로 이 시점에 반드시 해결해야 할 몇 가지 현안 과제를 회피하거나 미루지 않고 해결하는 정치적 결단이다. 이러한 정치적 결단은 국민의 지지에서 나오며 올바른 지지는 올바른 인식에서 온다. 그렇다면 우리경제가 선진화되기 위해서 어떠한 인식 전환이 필요한가?
무엇보다도 선진화된 경제운용을 위해서는 역설적이지만 경제제일주의를 버려야 한다. 이 경제제일주의의 사고는 필연적으로 높은 성장 목표의 제시와 이 목표의 달성을 위한 경제 각 부문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간여 그리고 정부와 기업의 강력한 연계 구조를 낳는다. 오늘날 우리의 국가지도자들에게 요구되는 경제 사상은 박 대통령을 성공으로 이끈 그것과는 달라야 한다. 우리 경제의 앞길을 어둡게 하는 구조적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적절하고도 충분한 인식을 가지고 국민들을 경계하고 설득하면서 우리의 경제 시스템을 시장 원리에 맞게 재정비하고 우리 경제의 세계 경제와의 통합이라는 중요한 과제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이 그 기본이 돼야 한다. 이에 대한 국민적 합의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도 빼 놓을 수 없다. 이런 바탕이 이루어진다면 굳이 경제 제일을 강조하지 않아도 다양한 국정 목표간 우선순위는 오히려 경제적 합리성을 기준으로 자연스럽게 조정돼 갈 것이다.
다음으로, 경제제일주의와 함께 버려야 할 것은 또한 개발연대의 생산자 중심의 사고방식이다. 기업은 글로벌 경쟁시대의 주역으로서 세계의 유수기업과 겨루려면 무엇보다 세계 시장의 변화나 세계 방방곡곡의 소비자 선호의 변화를 잠시도 놓쳐서는 생존할 수 없다는 소비자지향적인 경영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이렇게 될 수 있도록 조직과 경영체제를 갖추어야 한다. 이제 기업은 정부의 ‘지원이나 보호’와 ‘규제’는 표리의 관계에 있다는 깊은 인식을 가지고 정부에 대해 갖고 있던 종래의 기대를 재고(再考)해야 한다. 즉 ‘정부의 시그널’ 보다 ‘시장의 시그널’, 즉 경쟁자의 행동과 수요자의 선택을 행동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소비자들의 합리적인 선택능력은 이 모든 것의 전제다. 판별력 있는 유권자가 유능한 정치가를 양성하듯 현명하고 합리적인 소비자들의 보이지 않는 압력이 없이는 경쟁력 있는 기업도 합리적인 경제운용방향도 나올 수 없다.
이러한 과거의 타성에서 벗어나 법과 제도 그리고 경제의식이 글로벌 스탠더드를 지향해야 한다. 글로벌 스탠더드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기준이라고 할 수 있는데, 기본적으로 법치주의와 반부패, 언론 자유, 민주주의, 투명성, 개방성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춘다는 것은 지역의 특수성을 강조하여 예외조항을 만들어 가기 보다는 세계를 포용하는 개방적 지향성을 의미한다.
이러한 인식의 전환을 통하여 궁극적으로 시장원리에 부합하는 경제운용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이것은 단순히 시장에서의 경쟁에 모든 것을 맡기자는 것이 아니다. 현실적으로 완전한 시장은 없다. 그러나 시장의 원칙은 있다. 한 경제가 선진국이 되는 것은 국민소득의 성장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고 이를 가능하게 하는 적절한 경제시스템에 대한 지속적인 탐색과 이를 중심으로 한 일관성 있는 경제운용 없이는 불가능하다. 현재 세계경제는 생산의 세계화, 정보통신기술의 발전, 정치체제의 일극화 등으로 급격한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이러한 세계경제 하에서의 한국경제의 위치를 감안하면 시장경제의 원리에 충실하고, 개방적이며 국제화된 기준을 받아들이고, 투명하게 경제를 운영하는 것 이외의 대안은 없다. 선진국이 된다는 것은 생산성이 높은 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는 기업이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는 나라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며 과거와 같이 물적인 비교우위보다는 국경간 이동이 불가능한 경제시스템과 사람의 비교우위가 이것을 결정한다. 효율적인 경제시스템과 경쟁력 있는 인재는 폐쇄되고 통제된 환경에서는 나올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