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정체 상태에 빠진 韓日, ‘경제공동체’로 미래를 열자! “韓日 단일경제권 형성, 양국 미래와 안보의 획기적 토대 될 것”
매체명   월간조선 12월호 발행일자   2025/12/09 조회수   0
 
[파격 제안]
정체 상태에 빠진 韓日, ‘경제공동체’로 미래를 열자!
“韓日 단일경제권 형성, 양국 미래와 안보의 획기적 토대 될 것”

월간조선 25년 12월호

⊙ 한일 해저터널은 중국·시베리아 횡단철도와 연결…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에 도움
⊙ “AI, 양자 컴퓨팅, 반도체 등 新산업 분야에서 윈윈… 과거의 ‘제로섬’ 관계 아니야”
⊙ “300여km 한일 해저터널 건설, 기술적으로 문제없어”
⊙ “한일 경제의 문제는 같기 때문에 한국도 일본이 걸었던 ‘잃어버린 30년’ 가능성 커”
⊙ “좌파 정부가 反日 부추기면 지식인이 나서서 막는 수밖에”
             
金仁浩
1942년생. 경기고, 서울대 법대 졸업, 미국 시러큐스대 맥스웰 대학원 행정학 석사 / 경제기획원 차관보·대외경제조정실장, 환경처 차관, 한국소비자보호원장, 철도청장, 공정거래위원장,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 국가경영전략연구원장, 중소기업연구원장, 한국무역협회장 역임. 現 시장경제연구원 이사장 / 저서 《明과 暗 50년: 한국 경제와 함께 1·2·부록》 《경쟁이 꽃피는 경제》 《길을 두고, 왜 길 아닌 데로 가나》 《시장이 살아 숨 쉬는 경제, 창조적 기업이 샘솟는 나라》 《대통령 경제론》 등


  “한국과 일본이 단일경제권을 형성한다면 미국, 중국, EU와 더불어 세계 최대 경제권의 하나가 되어 양국의 경제 발전을 이룰 겁니다. 이는 동아시아 안보 정세의 안정에도 획기적인 토대가 될 것입니다. 미중(美中) 갈등 등 예측 불허의 글로벌 경제 환경하에서 강대국의 독단에 흔들리지 않고 주체적인 경제 운영을 지속해 갈 수 있는 길이 열릴 겁니다.”
 
  김인호(金仁浩·83) 시장경제연구원 이사장은 오래전부터 ‘한일(韓日) 경제공동체’를 주장하고 있는데, 올해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맞아 그의 목소리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김 이사장은 1967년 경제기획원 사무관으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해 경제기획원 물가정책국장·경제기획국장·차관보·대외경제조정실장, 환경처 차관, 한국소비자보호원장, 철도청장, 초대 장관급 공정거래위원장,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장관급) 등 30년 이상 공직에 있으면서 경제 정책 입안의 핵심적 직책을 역임했다. 공직에서 떠난 이후에도 국가경영전략연구원장, 중소기업연구원장, 정부의 소비자정책위원회와 중장기전략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아 민간에 있으면서도 경제 정책 입안에 깊이 관여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을 당시 제29대 한국무역협회장을 맡고 있었는데 임기가 넉 달 남은 시기에 “문재인 정부와 기조가 맞지 않는다”며 무역협회장 직을 던졌다.
 
  시장경제연구원을 설립하고 ‘시장주의자’를 자처하는 김 이사장은 한일 관계에 관심이 컸다. 공정거래위원장을 맡던 1996년에 ‘한일 양국의 경제 개혁 과제 공유’라는 주제로 일본의 저명한 저술가이고 나중에 경제기획청 장관을 역임한 사카이야 다이치(堺屋太一)와 장시간 대담을 했고, 한국무역협회장(2015~17년)을 맡았을 때는 3년 연속 한일경제인회의, 와세다대, 서울도쿄포럼에서 기조강연을 했다. 지난 6월에는 ‘일한터널 추진협의회’ 주관의 규슈협의회 요청으로 그 회의체 총회에서 ‘한일 경제공동체 실현을 위한 양국 지식인 사회의 인식과 역할’이라는 주제의 강연을 했다.
 
  “한일의 당면 과제는 결국 똑같다”
 
  “한국과 일본이라는 동아시아 두 중심 국가의 경제는 정체(停滯)에 머물고 있습니다. 일본은 ‘잃어버린 30년’을 경험하고 있으며 언제 다시 활기찬 경제로 돌아올지 누구도 자신할 수 없습니다. ‘잃어버린 30년’이 시작하기 직전인 1989년에 세계 주식 시가 총액 상위 기업 20개 중 14개나 차지했던 일본 기업은 오늘날 그 리스트에서 자취를 감췄습니다. 1967년 일본의 1인당 국민총생산(GNP)은 미국을 앞섰지만, 2023년에 미국의 41%에 불과했습니다. ‘잃어버린 40년’이라는 얘기마저 나오고 있죠.
 
  한국 경제 역시 20년 넘게 보다 경쟁력 있는 경제 구조로의 이행, 새로운 성장 동력의 발굴이라는 측면에서 큰 진전이 없습니다. 성장률 저하, 저조한 노동 생산성, 저출산·고령화라는 인구 구조의 심각성 등 한국 경제의 어두운 면은 본질적으로 개선될 징후가 보이지 않습니다. 양국이 정체를 타개하기 위해서 대내외적으로 특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상황에 부닥쳤습니다.”
 
― 해법이 있습니까.

  “저는 양국이 단일경제권, 즉 경제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이 그 해법의 하나라고 믿고 있습니다. 세계 경제에서 중국 경제의 위치나 그들의 팽창 의지, 또 언제든 위협이 될 수 있는 북한의 존재에 적절하게 대응하기 위해서 한국과 일본이 힘을 합쳐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대로, 일본은 일본대로 문제가 있지만 해야 할 과제는 결국 똑같습니다.”
 
― 똑같은 지향점을 갖고 있다는 거군요.

  “국민성의 차이는 있지만, 한국과 일본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그리고 국제 협력의 가치와 이념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이 가치와 이념이 양국의 경제 시스템과 정책, 기업 활동에 실질적으로 구현된다면, 양국은 당면한 많은 문제점을 치유하고 지속 발전을 할 수 있습니다. 한국과 일본 경제의 문제는 같기 때문에, 다시 말하면 우리가 일본이 걸었던 ‘잃어버린 30년’의 길을 걸어갈 가능성이 큽니다.”
 
  ‘55년 체제’와 ‘잃어버린 30년’
         


― 우리가 일본의 전철(前轍)을 밟을지 모른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라는 거군요.
 
  “제가 소비자보호원장을 했던 시기에 일본은 ‘잃어버린 10년’에 들어서고 있었습니다. 저는 ‘일본 경제가 어려운 것이 경기적 현상인가, 구조적 문제인가’에 관심이 컸습니다. 일부에서는 ‘플라자 합의(1985년) 때문이다. 일본 경기 침체는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했습니다. 그때 사카이야 다이치가 《일본경제신문》에 연재한 〈민족화 사회의 방정식〉이라는 글을 읽고 크게 공감했습니다. 그는 ‘자민당 일당(一黨) 지배 체제가 완성된 1955년 정치·경제 시스템이 한동안 너무 성공적이었기 때문에 일본은 성공의 기억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일본은 1990년대에 시작된 세계 경제의 혁명적 변화 추세를 선도적으로 제시하지 못한 것은 물론이요, 최소한의 수용도, 적응에도 실패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제 생각과 비슷했는데, 일본 경제의 추락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며 밑바닥에 깔린 구조적 문제를 정면으로 직시하지 않는다면 회복이 힘들 것으로 봤습니다.”
 
― 일본이 그저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고미즈미(小泉純一郞) 총리가 개혁하고자 노력했지만 일본 경제·사회의 공고한 경직된 체질을 바꾸는 데 실패했습니다. 2012년에 아베 신조(安倍晉三)가 총리로 재소환되어 일본 경제의 구원투수로 등장했죠. ‘아베노믹스’는 한마디로 ‘빚을 내서라도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정책은 일시적으로 경기를 부양했을 뿐 결과적으로 국민의 실질소득은 낮아지고, 산업과 기업의 경쟁력 향상은 역행하는 부작용을 낳았습니다.”
 
― 우리의 상황이 그와 비슷하다는 건가요?

  “‘잠재성장률’은 과거의 추세 연장선상에서 미래를 예측하는 것인데, 우리의 잠재성장률은 1991년 7.3%에서 2011년 3.2%, 2017년 이후 10년 동안 1~2%대로 주저앉았습니다. 양극화가 심화하고 자영업자·소상공인으로 대표되는 거대한 저(低)생산성 부문이 존재합니다. 저는 이 부문을 ‘한국 경제 만병(萬病)의 근원’이라고 부르는데,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시장에 대한 정부의 역할 등에 많은 문제가 있고 정치적, 사회적 갈등의 심화라는 구조적 문제가 경제의 앞길을 막아서고 있습니다. 양국 모두 이런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4차 산업혁명을 맞게 됐습니다.”
 
― 이것을 타개할 수 있는 것이 한일 경제공동체를 지향하는 거군요.
 
  “물론 미국·중국과의 관계도 좋아야 하지만, 가장 가능성이 있음에도 여태 발전하지 못한 부분이 한일 관계입니다. 한일 관계의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 것은 경제는 물론이요 안보를 위해서도 중요합니다. 한미일 관계가 돈독해진다면 중국이나 북한의 위협을 걱정할 필요가 확 줄어듭니다. 미국은 그 자체로 거대경제지만 경제·안보 분야에서 혼자 하기보다 세계와 동맹 관계를 구축하겠다는 입장이기 때문에 거기에 적극적으로 편승하는 것이 좋습니다.”
 
  “한일 교역 규모, 2011년 이후 줄어들어”
 
  김인호 이사장은 한국과 일본을 ‘협력의 효과를 가장 극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이 큰 파트너’로 인식했다. 한일의 경제 교류는 1965년 이후부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지만, 그 규모는 계속 줄어드는 추세다.
 
  “1965년 국교 정상화 이후의 양국은 교역 중심의 경제였습니다. 한일의 교역 규모는 2011년에 1000억 달러를 돌파하며 최고치를 기록했지만 이후 감소세로 반전(反轉)해서 2024년에는 772억 달러에 머물고 있습니다. 양국의 지리적 위치, 경제 발전 정도, 같은 가치관을 공유한 국가라는 점에 비춰 보면 터무니없이 작은 수치죠. 미국·중국·일본 중에서 우리나라가 가장 교역이 소원(疏遠)해진 곳이 일본입니다. 이 시기 동안에 양국의 산업 협력은 일본의 산업적 절대우위를 바탕으로 산업 간, 수직적 협력이 주를 이뤘고, 양국은 오랫동안 서로를 제로섬(zero sum) 게임의 경쟁 상대로 인식했습니다.
 
  한마디로 양국의 경제 관계는 양적(量的) 확대와 질적(質的) 변화를 향해 가는 잠재적 가능성을 전혀 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양국의 과거 종적(縱的) 관계는 지났고, 다른 패턴으로 가야 합니다.”
 
― 어떤 단계로 가야 합니까.
 
  “산업 협력과 인적 교류가 이뤄져야 합니다. 산업 간뿐 아니라 산업 내 협력이 절실합니다. 자동차를 생산할 때 제조, 연구 개발, 마케팅, 사람 양성을 따로 또 같이 하는 시대입니다. 산업 협력은 한국의 발전한 산업 경쟁력을 바탕으로 서로 플러스섬(plus sum), 즉 협업의 파트너로 인식하고 다양한 형태의 훨씬 고양된 관계로 발전해야 합니다. 한국의 산업 수준이나 규모의 발전 정도를 감안할 때 한국의 대기업과 일본의 소재·부품·장비 제조 기업 간의 협력, 일본의 제조업과 한국의 IT 기업의 연합 등 협력의 여지가 큽니다.
 
  최근 한국무역협회는 양국의 구체적인 협력 분야로 인공지능(AI)·양자 컴퓨팅·바이오·반도체·자원 에너지 공급망·수소산업 분야 등을 거론했습니다. 모두 세계 경제를 이끄는 신(新)산업 분야로, 협력의 여지가 매우 크고 윈윈 할 수 있는 사례입니다.”
 
― ‘제로섬’에서 ‘윈윈’으로의 길이 펼쳐질 수 있다는 얘기군요.
 
  “한국과 일본은 개방 과정에서 잃을 시장보다 새로이 얻을 시장이 훨씬 크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미국은 한일의 협력을 찬성할 것이고 중국은 불안할 겁니다. 북한은 남침하겠다는 꿈조차 꾸지 못할 겁니다. 북한의 핵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한국과 일본이 경제적 공동체가 되는 겁니다. 양국의 공동정부는 불가능해도, 경제공동체는 충분히 가능합니다.”
 
  “정치인·지식인들이 국민의식 오도”
 
  김인호 이사장은 이를 위한 전제 조건으로 ‘기본 인식의 전환’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양국이 가진 역사에 대한 콤플렉스에서 벗어나 합니다. 일본은 고대사에, 한국은 근대사에 콤플렉스가 있습니다. 일본이 조선 병탄의 합리화를 위해 제시한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일본이 고대에 가야·신라·백제를 직접 지배했다는 주장)’은 사실 대륙과 한반도를 통해 문화를 전수받았다는 콤플렉스에서 벗어나기 위해 조작된 것으로, 많은 자국민의 역사의식을 왜곡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근세에 일본 식민지가 되었다는 콤플렉스를 해방 8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반일(反日) 종족주의’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문제는 양국의 정치 지도자들과 상당한 지식인들이 이를 정치적 자산으로 삼아 국민의식을 오도(誤導)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한국과 일본이 이 콤플렉스에서 벗어나는 것이 양국 관계의 궁극적인 개선을 위한 선행 조건입니다.”
 
― 가깝지만 먼 나라라는 얘기가 딱 들어맞는 관계네요.
 
  “양국이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원수 같은 나라로 지내 온 줄 아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아요. 문화사학자 유홍준씨가 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일본편》에 보면 한일 두 나라는 한국의 삼국시대부터 교류와 협력의 역사를 바탕에 깔고 공통점을 공유했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실 150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양국의 관계는 기본적으로는 호혜와 협력의 역사였으며, 그 관계가 위협을 받을 정도로 문제가 있었던 기간은 상대적으로 짧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역사를 보면 호혜와 협력의 관계가 지속할 때는 두 나라가 다 같이 경제적으로도 번영했고, 반대로 두 나라 사이에 금이 가고 갈등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에 한국은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고, 일본 역시 결과적으로 국가적 위기와 경제적 어려움에 부닥쳤다고 쓰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남 탓만 할 것인가”

― 문재인 정부 시절 조국(曺國) 당시 민정수석이 일본을 비판하며 ‘죽창가’를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올린 것이 불과 몇 년 전입니다.
 
  “지도층 리더십의 문제를 여실히 보여 준 일입니다.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한국 정부와 정치권은 국민 정서니 여론이니 하는 데 파묻히지 말고 우리 국민에게 실질적으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과거사 문제에 대한 집착을 떨쳐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미래를 향해 양국 간 관계를 근본적으로 개선해 나가야 한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국민에게 간곡하게 당부하고 설득하는 의지와 능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문재인 정부가 전(前) 정부에 의한 일본과의 ‘위안부 문제 합의’의 파기, 강제 징용 피해자 배상 책임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2018년 10월 30일), 일본 측의 보복 차원의 주요 원자재의 대(對) 한국 수출 규제 등 양국을 최악의 상황으로 몰아간 점은 한심했습니다.”
 
  김인호 이사장은 인터뷰를 위해 〈3·1 독립선언서〉의 구절을 일부러 찾아봤다고 말하며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고, 우리의 근현대사를 정면으로 직시하자”고 말했다. 〈3·1 독립선언서〉의 구절이다(현대어로 옮김).
 
  〈자신을 채찍질하기에도 바쁜 우리에게는 남을 원망할 여유가 없다. 우리는 지금의 잘못을 바로잡기에도 급해서 과거의 잘잘못을 따질 여유도 없다. 지금 우리가 할 일은 우리 자신을 바로 세우는 것이지 남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다. 양심이 시키는 대로 우리의 새로운 운명을 만들어 가는 것이지 결코 오랜 원한과 한순간의 감정으로 샘이 나서 남을 쫓아내는 것이 아니다.〉
 
  김인호 이사장이 말을 이었다.
 
  “우리의 선조는 우리의 통렬한 반성으로 작금의 사태를 보자고 했습니다. 우리가 100년 이상 전에 살았던 선조의 의식 수준에도 전혀 미치지 못하는 것이 아닌지 반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함재봉 교수의 ‘한국의 탄생’이라는 유튜브를 보면 조선조 말엽의 나라 사정은 참담했습니다. 민초(民草)들은 ‘나라가 망하는 것은 서글펐지만, 조선이라는 나라가 사라지는 것은 서러워하지 않았다’고도 했습니다. 정약용(丁若鏞)의 ‘애절양(哀絶陽)’ 시(詩)를 보면 조선시대 관리들은 세금을 많이 거두려 이미 죽은 사람과 갓난아이의 이름까지 군적(軍籍)에 올려 가혹하게 세금을 징수했고, 국민은 지옥 같은 삶을 살았다고 했습니다.
 
  대한제국이 제대로 된 근대화 노력을 했는데도 일본에 의한 식민지화가 이뤄졌을까요? 만약 일본이 아니라면 러시아나 중국 등에 의해 식민지화가 이뤄졌을 가능성은 없었을까요? 그것이 가져온 결과는 어땠을까요? 만일 우리나라와 일본의 근대화 순서가 뒤바뀌었더라면 우리가 일본을 식민지화하려고 하지 않았을까요? 그랬을 경우 우리는 일본보다 훨씬 더 문화적, 인도적으로 일본을 다스렸을까요? 역사에 ‘만약’은 없다고 하지만, 우리가 언제까지 남 탓만 하고 있을 겁니까? 감정적 반일주의로 국민의식을 오도하고 이를 정치적 자산으로 삼으려는 무리에 의해 퇴행적(退行的) 역사관을 갖고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한일 해저터널, 가능한가
 
  올해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맞아 경제단체 및 민간에서 이에 관한 포럼이 열리자, ‘한일 해저터널’ 건설이 다시 거론되고 있다. 한일 해저터널은 부산과 가까운 일본 규슈를 해저터널로 연결해 경제적 이익과 함께 평화와 유대의 가치를 실현한다는 취지의 건설 프로젝트다. 부산발전연구원에 따르면 부산 강서구~대마도(쓰시마)~후쿠오카를 연결할 해저터널은 총 길이 223km, 최대 수심 190m에 달한다. 김인호 이사장은 한일 해저터널 추진 모임의 멤버다. 김 이사장은 “공직에서 나와서 15년 가까이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에 의하면 한일 해저터널을 처음 거론한 사람은 일본 육군 대장 출신으로 나중에 조선 총독과 일본 총리를 지낸 고이소 구니아키(小磯 國昭)였다.
 
  “그가 영관(領官) 장교일 때 일본의 대륙 진출을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일본과 조선을 잇는 터널 건설을 제안해 논의가 처음 시작됐으나, 일본은 이후 흥미를 잃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한국에서는 1981년에 고(故) 문선명(文鮮明) 통일교 총재가 ‘제10회 과학 통일에 관한 국제회의’에서 한일 해저터널 건설을 촉구한 것이 본격적인 시작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한일 해저터널은 1990년대 이후에 한국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하면 으레 하는 얘기이자, 부산에서는 선거 철마다 나오는 단골 레퍼토리가 됐습니다.”
 
― 허황한 얘기 아닙니까. 전혀 진전이 없는 것 같은데요.
 
  “제가 몸담은 시장경제연구원에서 15년 전에 이용흠 회장이 이끄는 평화터널재단의 위탁을 받아 ‘한일 터널 건설의 타당성과 추진 방향에 관한 연구’ 결과물을 냈습니다. 선행 연구들과 달리 이 프로젝트가 갖는 정치적 특성을 정밀하게 규명하는 동시에 기술·경제적 접근, 정치·외교·안보적 접근 그리고 역사·문화·국민의식적 접근을 채택해 공학, 지역개발, 경제학, 국제정치학, 일본 정치 및 역사·문화 등을 전공한 연구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학제적(學際的)인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우선 300여km에 달하는 장대한 해저터널 건설은 현대의 토목과 건설 분야의 기술 진보에 의해 기술적으로 가능합니다. 경제성 부문에서는 타당성 확보에 다소 문제가 있지만 한일 FTA의 체결, 동북아 경제 통합과 글로벌 교역 확대에 의해 경제적 파급 효과를 극대화하는 한편, 지속적인 기술 개발에 의해 건설과 운영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면 비용효과적 사업이 이뤄질 수 있다고 봅니다.”
 
  “한일 해저터널은 정치적 프로젝트”
      
― 영불 해저터널(1994년 건설·총 길이 50.5km)도 경제적으로는 실패작이라는 의견이 많은데요.
 
  “영불 해저터널의 또 다른 이름이 뭡니까? ‘유로터널’이죠. 원래 이 터널의 공식 명칭은 해협 터널(The Channel Tunnel)인데 그렇게 불리는 이유는 터널이 갖는 유럽 통합의 상징적 의미가 반영돼서일 겁니다. 나폴레옹 시대부터 영국과 유럽 대륙을 잇는 해저터널 건설 구상이 존재했지만 논의 수준에 머물고 있다가, 대처 수상과 미테랑 대통령이라는 영국과 프랑스의 걸출한 정치 지도자의 전격적 결단과 합의에 의해 그 구상이 유로터널로 실현된 겁니다. 유럽인들이 기대했던 것만큼의 경제적 성과가 나오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내포하는 상징적 의미를 봐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한일 해저터널은 ‘정치적 프로젝트’라고 말합니다.”
 
― 정치적 프로젝트라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유로터널에 대한 논의는 처음 프랑스의 한 광산 기술자에 의해 1802년에 제안된 때까지 올라가면 무려 200년 이상의 역사가 있고, 20세기 최대의 민간 토목 공사로 꼽힙니다. 한일 터널이 건설된다면 규모 면에서 유로터널과는 비교할 수 없는 대규모 토목 사업이 될 겁니다. 연구 당시 최소 66조원에서 97조원의 비용이 들어갈 것으로 추산됐습니다. 물론 기술적 시행 가능성에 더해 경제적 타당성에 대한 정밀한 검토가 필수이지만, 이 프로젝트가 양국 지도자들의 정치적 결단을 요구하는 정치적 프로젝트라고 성격을 규정한다면 경제적 타당성을 넘어서 다양한 측면의 효과를 찾아야 합니다. 오히려 기술·경제적 측면보다는 앞으로 언급할 다양한 측면에 대한 국가 차원의 인식과 고려, 그리고 능동적 대응이 더 중요할 수 있다는 겁니다.
 
  우선 외교·안보적 측면에서 한일 터널은 중국의 부상(浮上)에 대응해 반드시 있어야 할 한일 연대 강화의 실질적이고 가장 가시적인 사업으로서 효과를 낼 겁니다. 중국의 한반도에 대한 상호 의존을 심화시켜 지역 질서를 존중하도록 유도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둘째, 한일 관계가 근본적으로 개선됩니다. 과거사 문제, 독도 문제 등 제약 요인이 상존해 있지만, 우리 국민 대다수가 대승적 차원에서 일본을 바라봐야 합니다. 이제는 우리가 적극적으로 한일 관계 개선의 주도권을 쥘 필요가 있습니다.”
 
  “실질적으로 反日·反美 부추기는 것은 정부”
 
― 천문학적 규모임에도 미래 세대, 후손을 위해 해야 할 프로젝트라는 얘기로 들립니다.
 
  “한반도의 리스크 관리와 평화 정착에 유효합니다. 한일 양국 간의 연결에 그치지 않고 한일 철도가 남북한을 거쳐 중국횡단철도(TCR) 및 시베리아횡단철도(TSR)와 연결되면 궁극적으로 유럽과도 연결되는 유라시아 철도가 완성됩니다. 한일 터널은 궁극적으로 일본을 비롯한 유럽, 러시아 중앙아시아, 중국, 몽골, 미국 등과의 물류 교통망 확충의 일환으로 작용할 것이며, 건설 과정에서부터 국제적 공조 체제가 유지되어 한반도의 평화 체제 구축에 도움이 될 겁니다.”
 

― 우리는 정권에 따라 대일(對日) 관계가 단절되다시피 했다가 다시 회복되기를 반복하는데, 만일 합의가 됐다고 한들 계속 끌고갈 수 있을까요?
 
  “미래를 여는 주체는 누가 돼야 할까요? 우리나라, 일본 모두 주요 문제가 있을 때 그 해결을 정부의 역할과 기능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정부의 결단과 역할은 최종적으로 중요합니다. 이번 경주 APEC 기간에 엔비디아의 젠슨 황, 삼성 이재용, 현대차 정의선이 서울의 호프집에서 치맥 회동을 했습니다. 정부에서 그들의 모임을 주선하고 만나라고 독려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 스스로 필요에 의해서 자발적으로 만난 겁니다. 일본과의 협력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부와 정치권은 결국 국민의 선택을 존중할 수밖에 없고,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국민의 선택을 유도하는 기능과 역할은 더는 정부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오히려 시민사회 지도자들, 지식인 사회의 지도자들이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주의 사상, 친북(親北) 사상으로 뒤덮인 좌파 정부에서 자꾸 국민의 반일 감정을 부추기고 일본을 팔고 저주하면서 그로 인한 반사이익을 얻겠다고 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한일이 밀착하면 한미 관계가 소원해지지 않을까 하며 많은 사람이 걱정을 하는데, 저는 중국이 존재하는 한 미국이 한국을 버릴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한국 국민 스스로 반미(反美)로 돌아서면 미국이 그것을 막을 방법은 없습니다. 실질적으로 반일·반미를 부추기는 것은 정부이기 때문에 이를 막을 수 있는 것은 국민밖에 없습니다. 학자, 종교인, 언론인 등 지식인들이 앞장서서 이를 막아야 합니다.”
 
  “먼저 손을 내미는 측이 이기는 것”
 
- 우리가 골머리를 앓는 저출산 문제, 청년을 위한 일자리 창출 문제 등에 대한 해법도 한일 경제공동체에서 찾으시는 거지요?
 
  “경제 문제의 대다수는 기업이 활성화될 때 풀릴 수 있습니다. 좋은 일자리가 많이 만들어진다면, 소위 말하는 ‘스카이대’를 나오지 않아도 안정적인 직장을 잡을 수 있다면, 결혼을 안 할 이유도 아이를 낳지 않을 이유도 줄어들 것입니다.
 
  이코노미스트의 입장에서 보자면 모든 문제의 실마리는 기업을 존중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관료 생활을 하면서 중간간부 정도의 직책에 있을 때까지는 저도 기업에 대한 부정적 생각이 많았습니다. 기업의 흑역사와 행태, 돈을 번 정당성에 대한 회의가 분명히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생각이 완전히 바뀌어 시장경제연구원도 만들었습니다. 기업이 조(兆) 단위의 돈을 갖고 있다면 그냥 쌓아 두는 것이 아니라 재투자를 할 수밖에 없고, 일자리를 만드는 데 쓰일 수밖에 없습니다. 수없이 생각을 해봐도 기업이 잘돼서 고용, 복지, 분배의 주체가 되게 하는 것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습니다. 기업의 목표와 국가의 목표가 일치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기업가형 국가를 표방해야 하고, 그 중심에 기업가가 서도록 해야 합니다. 한일 경제 통합이 이뤄진다면 기업의 역할은 더욱 커질 겁니다.”

- 돌고 돌아 경제를 운용함에서 시장에 대한 존중과 부강한 한국 경제를 위한 제안이네요.
 
  “한국 정부와 정치권, 여론 지도층을 향해 끊임없이 얘기하고 싶습니다. 한일 관계는 근본적으로 개선돼야 합니다. 이제는 과거사 문제에서 과감하게 뛰쳐나와 미래를 향한 양국 간 관계를 모색해야 합니다. 어느 측이 됐건 먼저 손을 내미는 측이 이기는 겁니다. 우리 한국이 먼저 손을 내미는 결단을 해야 합니다. 감정적 반일주의를 앞세워 이를 정치적 자산으로 삼으려는 무리에 의해 포획되고 퇴행적 역사의식으로 진정한 선진의 길을 포기하는 국민들로 남을 겁니까? 선택은 우리 국민의 몫입니다.”⊙

글 : 정혜연  월간조선 기자  hych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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