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상세검색   제목    IMF 격동의 1997년, IMF 사태의 주범은 누구인가 매체명   월간말 발행일자   2002/03/01 조회수   0   IMF 격동의 1997년, IMF 사태의 주범은 누구인가 “금융개혁법안 국회 보류가 환란 촉발했다” 김영삼 정권 말기 한국경제를 이끌었던 강경식 전 부총리와 김인호 전 청와대 경제수석에 대한 형사재판이 항소심에서 계속되고 있다.(1심에서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른바 IMF 환란을 초래한 혐의다. 경제정책 판단이 과연 형사소추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 라는 법리적 문제는 제쳐두더라도, 그들이 IMF 환란이라는 한국전쟁 이후 최대의 국난을 실제로 초래했는지는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문제다. 기자가 만난 김인호 전 경제수석은 오히려, 강경식 경제팀이 수립해뒀던 외환수급계획이 부당하게 좌초되면서 작은 고통으로 끝날 수 있었던 IMF 사태가 큰 고통으로 확대되었다고 주장했다. 이야기는 후임 임창렬 부총리가 IMF 구제금융 신청을 공식발표한 1997년 11월 21일에서 5일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종태 기자 jtlee@digitalmal.com 1997년 11월 16일 일요일 오후 노년의 프랑스인 한 명과 두 명의 수행원이 김포공항에 조용히 도착했다. 그의 국제적 명성, 그리고 당시 한국의 상황을 두고 볼 때 정부 차원의 공식 접견이 공항 청사에서 있지 않았던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그는 김우석 국제금융국장의 비공식 안내를 받아 곧바로 서울시 삼성동 인터컨티넨탈 호텔로 향했다. 그들은 남의 눈에 띌새라 곧바로 객실로 올라 여장을 풀었다. 이어서 한국경제의 수장인 강경식 경제 부총리와 이경식 한은총재 및 수행원들이 그를 방문하고 인사를 나눈 후 이어서 식사를 곁들인 회담에 바로 들어갔다. 극비리에 의견을 나누고 합의해야할 중대 사안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프랑스인은 IMF 총재 깡드쉬. 그리고 김인호 전 경제수석에 따르면 이날 무역규모 세계 제11위 국가인 대한민국의 IMF행(行)이 사실상 결정되었다. 깡드쉬의 극비 방한 깡드쉬의 극비 입국은 외환보유고가 급격히 떨어지면서 상황이 더 악화되기 전에 IMF의 자금지원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결심한 한국정부의 요청에 의한 것이었다. 그 전날밤 대책회의를 같이 한 김 전 경제수석은 직책상 그 자리에 참석하지는 않았지만 이날 회동의 결과를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역할을 맡았다. -어떤 이야기가 오갔다고 합니까? “깡드쉬는 외환보유고부터 질문했습니다. IMF 지원을 신청했을 때 외환보유고가 30억 달러에 불과했던 태국과 비슷한 상황일까봐 두려웠던 것이지요. 그런데 그당시 한국의 외환보유고는 총보유 264억 달러, 가용보유 174억 달러로서 한달 반 정도는 버틸 수 있는 비교적 양호한 규모였고, 더욱이 자발적인 금융산업 구조조정안까지 제시했기 때문에 이내 얼굴이 밝아졌답니다. 그는 ‘상황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김 전 경제수석에 따르면 양측의 대화는 매우 화기애애하게 진행되었다고 한다. 지원자금규모에 대해 우리측이 300억 달러를 제시하자 깡드쉬는 “시장 안정에 필요한 충분한 규모의 자금을 지원하겠다”고 제의했다는 것이다. -그럼 당시로부터 2주쯤 후 IMF 협의가 진행될 때처럼 한국경제 시스템을 깡그리 바꾸라는 식의 요구는 하지 않았다는 건가요? “그럴 수밖에…. 깡드쉬가 구조조정을 요구하지 않았다기보다 그들이 요구할만한 조치를 우리가 미리 준비하고 있었던 겁니다. 이틀 후인 11월18일 국회통과 예정이었던 금융개혁법안도 설명해줬었고. 나중의 경우처럼 초고금리 및 긴축재정을 요구하거나 대통령 후보자들에게 구제금융 조건을 지키겠다는 서명을 받으라는 등의 요구는 없었습니다. 단지 대통령 당선자의 차관협약 조건에 대한 지지가 필요하다고만 했지.” -결국 어떤 식으로 합의가 이루어졌나요? “금융개혁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고 금융ㆍ산업 부문의 획기적인 구조조정 추진 등 한국 정부가 자발적으로 구조조정을 선언하면서 당시의 유동성 위기의 극복방안으로 IMF와의 자금지원 합의사실을 발표하면 IMF가 이를 확인, 전폭 지지하는 거지요. 그리고 그 시기는 한국 정부의 판단에 의하되 IMF는 워싱턴에서 동시에 발표해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IMF로서는 상당히 파격적인 조건을 내건 것으로 보이는데요. “그렇지요. 이날 회동에서는 단순히 서로 협의하고 논의한 정도가 아니라 IMF 행(行)이 사실상 이뤄진 겁니다. IMF로 가는 것이 반드시 공식서류에 사인하는 것으로만 가능한 것은 아니죠. 한국의 IMF Governor인 경제 부총리가 대통령의 재가를 얻어 IMF의 최고 책임자에게 지원 요청을 했고, 총재는 지원 약속을 한 겁니다. IMF가 지난 1995년 도입한 '신속처리절차(Fast Track)'를 따른 거지요. 이전에 멕시코에 대한 지원도 이런 식으로 이루어 졌습니다. 깡드쉬는 그전에 강 부총리에게 하루 밤 동안 멕시코에 대한 구제금융 280억 달러를 동원했다고 자랑하더랍니다.” 시장안정과 구조조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 -그렇다면 그 사실을 왜 곧바로 발표하지 않았습니까. “대통령께는 다음날인 17일 아침 보고했습니다. 그러나 공식적으로는 18일 국회에서 금융개혁법안이 통과되면 금융산업구조조정에 관한 종합대책(이하 종합대책안)을 패키지로 발표하면서 IMF와 동시다발적으로 구제금융 지원사실을 발표하려고 했습니다. 즉 외환시장에 충분한 지원금이 들어오니까 국내외 투기꾼들은 장난칠 생각을 하지 마라’는 신호를 보내려고 했던 것이죠.” 금융ㆍ산업 구조조정과 함께 시장안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으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같은 ‘그랜드 디자인’은 결국 실패로 끝난다. 1997년 11월 18일 금융개혁법안이 국회에서 보류되었기 때문이다. 김 전 수석은 이를 ‘자발적인 구조조정으로 대응할 수 있었던 IMF 행(行)이 6.25 이후 최대 국난으로까지 불린 IMF 사태로 악화된 과정의 시작’이라고 설명한다. 국제신인도의 걷잡을 수 없는 하락이 가중되기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부결된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금융개혁법안 통과에 희망을 걸고 있었습니다. 이전에 여야가 모두 합의한 사안이었기 때문입니다. 여당(당시 신한국당)은 물론 야당(국민회의)도 수긍했던 법안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땐 못 하겠다는 거예요. 금융노조가 들고일어나니까, 표 잃을까봐 못 하겠다는 겁니다. 야당이 ‘너희들끼리 통과시켜라’는 식이었다면 여당은 ‘왜 우리만 나서서 노조의 욕을 혼자 먹나. 야당이 안 하면 우리도 안 한다’는 식이었어요.” -야당과도 합의했었다는 이야긴가요? “야당의 최고 정책팀과도 미리 합의했어요. 야당 협조 없이 될 사안이 아니잖아. DJ도 좋다고 했고. 그런데 막바지 가서 못 하겠다는 거야. 이유는 한가지 밖에 없어요. 표가 떨어진다는 거지.” -금융개혁법안이 부결된 그 다음날 곧바로 강 전 부총리와 함께 경질되셨지요. “법안이 부결되자 ‘종합대책안’이라도 마무리하고 IMF 지원 사실을 발표하려고 그날 밤 9시경부터 다음날인 19일 새벽까지 밤샘작업을 했습니다. 그날 가장 논란이 되었던 내용은 당시 일일 2.25%였던 환율변동폭이었지요. 시장론자의 입장에서 외환시장은 당연히 수급상황에 맡겨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그러나 가격이 수급조절 기능을 못하는 상태이었기 때문에 변동폭을 없애지 못했는데 IMF의 충분한 자금공급이 확보되었기에 사실상 변동폭 제도를 폐지하나 명목만으로 유지한 15%로 결정했습니다.” 강경식 경제팀은 19일 아침 김 전 대통령에게 이날 손질한 ‘종합대책안’과 함께 IMF 지원금 신청 사실을 발표하겠다고 보고한다. 김 전 경제수석에 따르면 김 전 대통령은 ‘그대로 하시오’라며 수락했다. 그러나 그들은 대통령 집무실을 나서고 얼마 안되어서 경질 통보를 받는다. -문책성 해임이었죠? “세상에서는 그렇게 말하는데… 노우! 아닙니다. 문책성이라면 우리가 만들어놓은 방안을 대통령이 받으면 안 되는 거지요. 우리를 못 믿어서 내보냈다면 그 정책을 왜 한 글자도 안 고치고 발표해? 말도 안 되는거야.” 이날 개각이 발표된 직후인 오후 5시 쯤 임창렬 신임 경제 부총리는 ‘금융시장 안정 및 금융산업구조조정 종합대책안’을 발표했다. 그런데 그 내용은 강 부총리, 김 수석 등이 밤새워 작업해서 대통령께 보고한 ‘종합대책안’과 동일한 것이었다. 당초 15%였던 외환변동폭이 10%로 바뀌었다는 것 외엔. 정말 이해가 안 되는데 경제팀을 왜 교체했을까요 “김 전 대통령은 검찰답변서에서 ‘금융개혁법이 통과되지 않았고 경제도 어려워서 민심수습 차원에서 개각했다’고 주장했지요.” 현 정부 구조조정의 원조는 강경식 경제팀 그러나 훨씬 더 중요한 문제가 있었다. ‘종합대책안’과 동시에 발표키로 한 ‘IMF와의 구제금융합의 발표’가 빠진 것이다. 김 수석은 경악했다. 16일 강 전 부총리와 깡드쉬 IMF 총재의 합의가 국제적 합의였기 때문에, 이날 구제금융 신청을 부인한 것은 국제협약 파기를 의미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시장에 충격을 줄 것이 뻔한 구조조정안을 발표하면서 자금공급 대책(IMF의 충분한 자금지원)을 제외한 것은 그야말로 ‘타는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었다. “이때부터 진정한 의미의 환란이 시작된거요. 한국의 국제신인도에 결정적 문제가 생기는데 어떤 투자자가 모험을 하겠어. 구조조정도 마찬가지지. IMF 이야기가 나왔을 때 우리끼리 주고받았던 말이 ‘바람직하진 않지만 구조조정을 생각하면 하나의 방법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정치인들은 구조조정이고 뭐고 표밖에 보이는 것이 없소. 득표에 도움이 된다면 영혼이라도 팔아먹는 자들이 정치인들이고, 어떤 원칙과 합리성도 돌아보지 않는 것이 정치인들 아니요.” -현직에 계실 때 구상하셨던 구조조정안과 IMF 주도 하에 관철된 구조조정을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김대중 정부의 금융ㆍ산업 구조조정의 원조는 우리요. 우리가 다 해놓은 것을 그대로 가져다가 써먹은거요. 그걸 조금 더 발전시켰거나 더 세부적으로 들어갔거나 하는 차이는 있지만…. 그래놓고 우리 때문에 IMF 터졌다. 금융개혁법 때문에 나라 망치고 환란에 대처 못 했다는 사람들이니 말이 되어야 이야기를 하지.” -그렇다면 강경식 경제팀이 좌절함으로써 어떤 문제가 생겼다는 것입니까? “11월 16일 나온 합의안과 이후 IMF 구조조정안과 다른 점은 초고금리, 긴축재정 등 거시정책에 대한 개입이 나올 건덕지가 없었다는 겁니다. 나중에 IMF가 초고금리와 재정긴축을 요구한 것은 한국의 신인도가 급격히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더욱이 임창렬 당시 부총리는 정통 재무관료로서 국제적으로는 내셔널리스트로서 개혁이나 개방과는 거리가 먼 사람으로 알려진 사람인데, 이 사람이 한국 경제정책의 책임자가 되었다는 것이 국제사회에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졌겠어요. 또 입각하자말자 ‘IMF 안 가고 해결하겠다’고 했다가 21일에 결국 구제금융을 신청했잖아요. 이것은 다만 19일 발표가 21일로 이틀 미뤄진 것이 아니라 16일 완전히 합의된 협약체계가 완전히 무너진 엄청난 사태였어요. 중요한 것은 오히려 ‘IMF로 가지 않겠다’고 했던 중대한 정책변화가 정부 차원에서 이뤄졌느냐, 혹은 임창렬씨가 단독으로 했느냐 예요." 김 전 경제수석은 강 전 부총리와 함께 IMF 환란을 초래했다는 혐의로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그의 진술이 사실이라면 사건의 성격은 완전히 바뀌어 질 수 있다. “정부 차원의 정책변화라면 김영삼 당시 대통령이 결정할 사안인데, 김 전 대통령은 임창렬씨가 단독으로 그랬다고 검찰총장이 보낸 질문에 분명히 답하고 있으니 그 말씀이 틀리지 않는한 임창열씨가 책임져야 할 일이지요. 우리의 계획대로 실행되었다면 초고금리나 긴축재정을 IMF가 요구하지 않거나 하더라도 받지 않았을 테고 이 때문에 우량기업이 줄줄이 무너지고 몇만명 규모의 실업이 발생하는 일도 없었을 거요.” 김영삼에게 협상타결 종용한 클린턴 -11월말 IMF 협의가 진행될 당시 미국 재무장관 루빈이 ‘한국은 디폴트로 갈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한국의 엄청난 국제신인도 추락 때문이었을 거요. 그래서 ‘한국은 한번 손을 봐야 한다’는 분위기가 팽배했던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금융산업 구조조정을 비롯한 구조개혁은 우리도 하려던 것이었으니까 모르겠지만, IMF가 요구했던 초고금리와 긴축재정 등 거시정책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었어요. 한국측 협상팀에서는 구조조정은 하겠지만 거시정책엔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나가야 했는데 처음엔 오히려 반대로 나갔어요. 그래서 미국측에서는 ‘이 친구들 뭐하는 친구들이야’ 이렇게 된 거야. 그래서 최종적으로 어떻게 됐어요? 클린턴이 대통령에게 전화해서… ‘지금 뭐하는 거냐. 진짜 부도를 낼 수도 있다.’ 완전히 협박성 전화를 한 거지. 그래서 한국 정부는 협상타결을 서둘렀고, 덜컥 초고금리, 긴축재정 등의 거시정책과 구조조정을 모두 받아들인 것 같아.” -제가 들은 바로는 1997년 11월초 한국의 외환보유고에 대해 블룸버그 통신이 악의적 보도를 내자 ‘음모론’적 시각을 제기하신 적이 있다고 하던데요. “워싱턴 컨센서스라는 것이 있는데, 이건 분명히 존재하는 겁니다. 좋게 해석하면 미국이라는 나라가 자국에서 바람직하게 생각하는 가치와 경제시스템을 세계에 확산시키겠다는 이야기거든. 그런데 확산시키는데 최적의 기회가 언제냐. 바로 어떤 나라가 정치적으로 불안할 때, 혹은 경제위기로 IMF 지원을 받아야 할 때 관철시키는 것이 좋다는 것이 워싱턴 컨센서스의 핵심이에요. 우리로서는 기분 나쁘겠지만 미국 입장에서는 자국의 경제시스템을 전파하겠다는 것이고, 자유경제가 되어야 ‘너도 좋고 나도 좋다’는 것이 자유무역이론의 기본이거든. 나쁘게만 생각할 것은 없어. 음모론이 뭔가 하면 ‘한국을 의도적으로 손보자’, ‘그동안 기분도 나쁘고 하니 환란 때 도와주지 말고 IMF에 집어넣자’, ‘일부러 돈을 빼게 하자’는 것인데 이것은 확인할 길은 없잖아요.”   첨부파일       관련문서